제1부 · 01 · 초고

바람이 먼저 왔다

평범했던 날의 끝에서.

새벽 바람은 늘 마을보다 먼저 일어났다.

아우는 지붕 틈으로 스며든 찬 기운에 눈을 떴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장아우(張阿佑)라 불렀다. 마을에서는 아우라고 짧게 불렀다.

그는 발뒤꿈치가 닳은 짚신을 신고 산길로 나섰다. 마른 나뭇가지를 한 단 더 가져오면 아궁이에 불을 넉넉히 지필 수 있다. 그 정도면 좋은 날이었다.

아침 안개 아래로 작은 논과 낮은 지붕이 붙어 있었다. 누가 어느 집에 사는지 눈을 감고도 알 만큼 작은 마을이었다. 아우에게 세상이란 이 산과 마을,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집이었다.

산 아래 길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못 보던 사람들이 지나갔다. 어떤 이는 북쪽의 옛 원군이 아직 말을 모은다 했고, 어떤 이는 주원장(朱元璋)에게 패한 옛 장수의 아들이 남쪽에서 곡식을 거둔다 했다. 말은 서로 달랐지만 빈 수레를 끌고 오는 사람은 없었다. 대개 피란민이었고, 두 발로 걸어온 아이들은 목적지를 묻는 말에 어른의 옷자락만 붙잡았다.

그해 봄에는 관청의 서리가 군적을 고친다며 마을에 들렀다. 명이 선 지 십여 년이 지났다는 말을 그는 문서 첫 줄처럼 외웠다. “이제 천하가 안정돼 각 집의 이름을 바로 적는다.” 촌장은 전란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지우고 살아 있는 사람의 수를 다시 불렀다. 서리는 붓끝으로 빈칸을 두드렸다. “아들이 있는데 어째 장부에는 가장이 없소?” 아우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아우는 서리가 고개를 숙인 어머니보다 빈칸을 오래 보는 게 싫었다.

저녁에 우물가에서는 두 노인이 다퉜다. 한 사람은 원나라 관리가 곡식을 빼앗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이 낫다 했고, 다른 사람은 나라가 바뀌었어도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들은 같다고 했다. 진노야(陳老爺)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우물 두레박의 닳은 줄을 갈았다. 아우는 새 줄을 잡아당겨 보았다. 손바닥에 닿는 감촉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그날 밤 피란민 모녀가 처마 아래서 쉬었다. 아이는 잠결에 낯선 말발굽 소리만 들으면 엄마의 팔을 붙들었다. 아우의 어머니는 다음 날 먹을 쌀을 조금 씻어 죽을 끓였다. 아우는 내일 자기 그릇이 얼마나 얕아질지 생각하면서도, 아이가 두 번 받아먹는 모습을 보고는 더는 셈하지 않았다.

산 아래에서 쿵,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어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바람에 섞였다. 어른들은 멀리서 반란군을 토벌하는 관군이 지나간다 했지만, 아우는 군대를 본 일이 없었다.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그는 개울가에서 물을 마셨다. 물 위의 작은 잎이 굽이를 돌아 사라질 즈음, 먼 길에서 말 한 필이 달려왔다.

말은 마을 어귀에서 멈춰 섰다. 타고 있던 사내가 안장에서 굴러떨어졌다. 아우는 바구니를 놓고 뛰었다. 사내의 소매가 피에 젖어 있었다.

“아저씨, 들리세요?”

사내는 대답 대신 아우의 소매를 붙잡았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 군사들이 온다.”

아우는 마을 쪽으로 달렸다. 산 너머에서 까마귀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그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알았다. 다만 돌아올 길이 어제와 같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