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 사내는 우물 옆 헛간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가 상처에 댈 천을 끓였고, 촌장이 물었다.
“누가 쫓아왔소?”
사내는 입술을 움직였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옷깃 안쪽에서 손바닥만 한 검은 조각이 떨어졌다. 촌장은 주워 헛간 구석에 놓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몰랐다.
오후에 말발굽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관군의 깃발과 함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가 있었다. 촌장은 다섯 세가의 젊은 자제들과 고수들이 반란군 토벌에 힘을 보태러 왔다는 말을 이미 들었다. 길을 지나는 백성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활약이 화제였다.
선두의 장교가 문서를 펼쳤다. “폐하의 명을 받들어 반란군을 토벌한다. 군량을 내어라.”
“올해 거둔 것이 넉넉지 않습니다. 겨울에 먹을 몫만은 남겨 주십시오.” 촌장이 고개를 숙였다.
장교의 뒤에 선 서리는 징발 문서의 봉인을 들었다. 종이에는 멀리 떨어진 고을의 인장도 덧찍혀 있었다. 피란민을 먹인 집과 말에게 먹일 볏짚의 양까지 적혀 있었다. 촌장은 “이미 지난달에 짚을 냈습니다”라고 했으나 서리는 지난달 문서의 글씨가 흐리다며 새 장부에 다시 적었다. 아우의 어머니는 그 종이를 보려고 다가갔다가 장교의 창자루 앞에서 멈췄다.
동행한 세가의 젊은이들은 누구의 인장이 유효한지 서로 속삭였다. 그중 하나는 자기 집안의 호위가 군량 수레를 지키므로 곡식이 분명 반란군에게서 백성을 구할 거라고 했다. 다른 이는 수레를 따라간 곡식이 그저 다음 장수의 창고에 쌓일 수도 있다고 낮게 답했다. 아우는 높은 사람이 싸우는 까닭을 알기 전에 높은 사람이 쓰는 종이 때문에 집의 겨울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았다.
“반란군이 여기까지 내려오면 그 겨울을 맞을 수 있겠느냐?”
병사들이 곡식 자루를 수레에 실었다. 그중 하나는 아우의 어머니가 마당에서 말리던 것이었다. 아우가 자루를 붙잡자 병사가 말했다. “비켜라.”
“그건 우리 집 겨울 양식입니다.”
곁에 있던 젊은 세가 자제가 돌아보았다. 그는 방금 전까지 마을 아이들에게 반란군을 베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자제는 아우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비틀었다. 아우의 무릎이 흙바닥에 닿았다.
“힘도 없는 놈이 군무를 막겠다는 거냐?”
아이들 앞에서 웃음이 터졌다가 곧 그쳤다. 아우는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칼이 뽑힌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다가오자 자제는 손을 놓았다. 아우는 붉어진 얼굴로 일어서려다 다시 한 번 바닥에 손을 짚었다.
마을 뒤 공터에는 장작을 패던 진노야가 서 있었다. 그는 군사들이 지나가는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만 자제가 쥔 손목의 모양과 아우가 넘어진 방향을 끝까지 보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온 것은 오래전이었다. 길을 지나던 호리호리한 노인이 빈집에 머물렀고, 어느새 함께 겨울을 났다. 이름을 묻자 그는 성만 밝히며 그냥 진 노인이라 부르라고 했다. 촌장은 흉년의 곡식을 어떻게 나눌지 막막할 때면 그를 찾았다. 말수는 적어도 사람의 사정과 계절을 헤아리는 데 어긋남이 없었다. 사람들은 어느 날부터 그를 진노야라 불렀다.
장작은 그의 손에서 유난히 쉽게 갈라졌다. 숲 가장자리에서 마주친 산짐승도 한참 그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어른들은 그가 강호에서 왔을지 모른다고 낮게 수군댔지만 누구도 직접 묻지 못했다. 아이들은 문틈으로 그 말을 듣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관군이 떠난 뒤, 집집마다 곡식이 조금씩은 남았다. 촌장은 남은 양을 헤아리다 주판을 내려놓았다. 누구도 겨울까지 버틸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아우는 공터의 진노야에게 물었다. “저도 힘을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까?”
진노야는 곧은 나뭇가지를 건넸다. “저 돌까지 갔다가 돌아와라. 발을 끌지 말고.”
첫 번째에 발이 엉켰다. 네 번째에는 돌에 닿았으나 돌아오는 길에 넘어졌다. 여섯 번째에는 숨이 차서 멈췄다. 진노야는 다리의 방향만 고쳐 주었다. 열두 번째에도 아우는 돌에 닿기 전에 나뭇가지를 떨어뜨렸다.
“오늘은 그만하자.”
아우는 고개를 숙였다. 무릎의 흙이 어제보다 더 짙었다. 진노야는 그제야 소년을 바라보았다. 웃음거리가 된 것보다, 다시 그 자리에 서겠다고 찾아온 것이 더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