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장은 빈 마당에 사람들을 모았다. 집마다 남은 곡식을 헤아려 서로 빌릴 수 있는 양을 적자고 했다. 종이에 적힌 수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말은 줄었다.
“관군은 반란군을 쫓으러 간 거잖아요.” 누군가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또 들르진 않겠지요?”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길은 하나였고, 수레 바퀴 자국은 마을을 지나 산 아래로 이어졌다.
아우는 어머니와 함께 나뭇단을 쪼개어 이웃집 문 앞에 놓았다. 곡식을 나눌 수 없다면 땔감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그러나 해가 지기도 전에 팔에 힘이 풀렸다. 아침 공터에서 수없이 넘어졌던 무릎도 욱신거렸다.
어머니가 말했다. “다치면 내일 일을 못 한다. 오늘은 쉬어.”
아우는 나뭇단을 내려놓았다. 쉬어야 한다는 말이 싫었지만, 마지막 한 묶음을 옮길 힘조차 없었다.
그날 밤 헛간의 사내가 깨어났다. 물을 가져간 아우에게 그가 먼저 물었다. “군사들이 왔느냐?”
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마른 입술을 적시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우는 그가 반란군인지, 관군인지 묻고 싶었다. 관군은 백성을 지킨다면서 어머니의 곡식을 가져갔다. 그렇다면 누가 옳은 편인지, 이 사내가 어느 편인지 알아내면 답이 달라질까. 지금 답을 듣는다 해도 곡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는 물그릇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명군을 피한 집도, 반란군의 말을 거절한 집도 똑같이 문을 걸어 잠갔다. 북쪽의 원군 잔병, 옛 경쟁 세력의 장수, 도망친 농민이 같은 깃발 아래 섰다는 소문은 절반쯤 사실이었다. 그중 누군가는 왕좌를 말했고 누군가는 씨앗을 뿌릴 땅만 원했다. 그는 아우에게 그 복잡한 이름들을 설명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 말 한가운데서 도망쳐 왔다는 것부터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우가 나가자 사내는 헛간 틈으로 마을을 보았다. 아이들이 줄을 묶어 말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남은 곡식을 가늠했다. 어느 쪽 군대가 내일 이 길을 지나든 아이들의 줄은 또 군량 수레를 끄는 끈이 될 것이다. 사내는 그 생각이 싫어서 상처가 벌어지는 것도 잊고 일어서려 했다. 두 걸음 못 가 다시 주저앉았다.
“아저씨, 일어날 수 있으세요?”
사내는 일어나려다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곡식은 얼마나 남았느냐?” 그가 물었다. 아우가 대답하지 않자 사내는 벽에 기대었다. “내가 빚을 졌구나. 나을 때까지 기다려 다오.” 아우는 물그릇을 가까이 밀어 놓았다.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말은 아직 할 수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물을 떠오고, 내일 쓸 나무를 남겨 두고, 공터의 돌까지 다시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새벽에 그는 공터로 나갔다. 진노야는 먼저 와 있었다. 아우가 나뭇가지를 들자 진노야가 말했다.
“어제는 너무 빨랐다. 오늘은 넘어지지 않는 것부터 해라.”
아우는 돌을 향해 천천히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