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 13 · 초고

세 사람의 봉함

호송 임무는 끝난다. 살아남은 세 사람에게는 다른 길의 명령이 내려온다.

청성의 의원은 아우의 허벅지를 꿰매고 며칠을 걷지 말라고 했다. 소호는 살아남은 수레꾼들과 죽은 이들의 짐을 갈랐다. 강이준의 지도에는 청성산 아래에 마지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 뒤의 길은 비어 있었다. 석두는 다친 팔로 지도를 접을 수 없어 아우에게 건넸다.

임정현은 황제의 명과 실제로 도착한 물자의 수량을 대조한 수령증에 도장을 찍었다. 받지 못한 차액에는 받지 못했다고 적었고, 산문에서 죽은 호송 인원 다섯의 이름도 별지에 남겼다. 그는 제갈세가와의 약정을 자기 인장 아래 첨부했다. “우리 책임까지 지우지는 않겠소.” 소호는 그 말을 듣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책임을 적는 일은 시작일 뿐이었다.

청성의 물자를 넘긴 순간 호송대의 임무는 끝났다. 생존자들은 관아의 원래 집결지로 돌아가 해산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장례를 마치기 전에는 누구도 수레를 움직이지 않았다. 양설이 곽삼복의 지팡이를 씻어 놓았고 허영은 산문 밖에서 상여가 지날 때 검을 풀었다. 아우는 그들이 전날 같은 칼을 막아 주려 했다는 것도 알았다. 용서할 수 있는지까지는 정하지 못했다.

관아로 넘길 수령증을 봉하려던 날, 도성에서 온 사자가 별도의 명을 전했다. 마지막 지급의 원본 수령증과 낙양의 대조 요청, 소림의 누락 청원, 양양의 임시 보관증, 청성의 차액 별지를 지방 관아에 맡기지 말고 조정의 문서 접수처에 직접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사자는 봉한 종이를 펼치지 않았다. 명을 받는 사람의 이름이 이미 적혀 있었다. 장아우, 소호, 석두. 강이준의 이름은 없었다.

“왜 우리입니까?” 소호가 물었다. 사자는 “장부를 지키다 살아남은 증인이니 조정에서 직접 듣겠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은 설명처럼 들렸고, 동시에 더 묻지 말라는 소리 같았다. 석두는 세 사람의 이름을 내려다봤다. 낙양에서 제갈소연이 호송대 명부에 아우를 표시하던 순간을 그도 보았다. 지금 이 명과 그 먹점이 이어졌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렇지만 종이 위의 이름이 너무 정확했다.

아우는 어머니에게 귀향 날짜를 적은 편지를 보냈다. 보내 놓고 다시 읽으니 날짜는 쓸 수 없었다. 그는 그 부분에 줄을 그었다. 어머니가 마을에서 보낸 평온한 해들을 떠올렸다. 죽은 이들의 장부를 지키겠다는 이유로 다시 길에 선 것이 옳은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질문을 할 사람에게 먼저 자기 몸이 살아 돌아갈 거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소호는 편지를 봉할 때 아우가 종이를 오래 쥐고 있는 것을 보고도 재촉하지 않았다.

사자가 안내한 길은 곧장 관도를 따라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몇 문파의 객잔과 세가가 관리하는 역로를 거치면 더 빠르다고 했다. 서찰에는 통행을 보장한다는 이름들도 적혀 있었다. 아우는 이미 낙양과 청성에서 그 이름들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았다. 세 사람은 길을 고를 권한이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했지만, 문서의 사본을 따로 나누어 몸에 지녔다. 석두는 옛날 군량 날짜가 적힌 종이와 새 수령증을 서로 다른 곳에 넣었다.

청성 아래에서 첫발을 내딛을 때 소호가 말했다. “이게 끝나면 집으로 가자.” 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약속이지 확신은 아니었다. 조정으로 가는 길에 다시 문파와 세가의 문턱을 넘어야 했다. 누군가는 그들이 가져가는 문서를 읽고 싶어 할 것이었다. 아우는 아직 누가 세 사람을 그 길에 올려놓았는지 몰랐다. 다만 이제 칼보다 앞서 움직이는 것은 자기 손에 든 봉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떠난 뒤 다른 곳에서 낙양의 호송대 명부 사본 한 장이 펼쳐졌다. 장아우의 이름 옆에는 오래전에 찍힌 먹점이 있었다. 누군가 그 아래에 청성의 다섯 사망자와 새 봉함의 경로를 덧적었다. 제갈의 손인지, 조정 안의 손인지, 더 오래된 조직의 다른 갈래인지 그 종이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세 사람이 스스로 길을 골랐다고 믿는 동안, 다른 사람도 그 길을 계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