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10 · 초고

흙먼지 아래의 명단

강호의 출정과 삼만 명의 집결. 사람은 군대의 숫자로 다시 적힌다.

화산의 산문에는 전장에 나갈 열여덟 명의 이름이 붙었다. 적운검 위청악은 수레에 새 깃발을 실었고, 고송검 유청림은 말 없이 제자들의 신발 밑창을 뒤집어 보았다. “검집보다 끈이 먼저 끊어지겠다.” 떠나는 제자 하나가 장난처럼 웃었다가, 유청림이 싸 준 바늘 주머니를 받고 웃음을 거뒀다.

형산세가에서는 가주 형무진이 직접 여섯 명의 고수와 의원 둘을 배웅했다. 원로 형수백이 토지 하사 서류를 품에 넣는 것을 보고, 형무진은 의원에게만 따로 말했다. “전장에 적과 우리 편이 섞이면 먼저 숨 붙은 사람을 봐라.” 의원은 누구의 숨부터 보아야 하는지 되묻지 않았다.

청성파 장문 임정현은 떠나는 제자들에게 대열을 벗어나 사람을 구할 때 반드시 둘씩 움직이라 일렀다. 구호와 검수 지휘를 맡은 장로 현죽도인 조명원, 당욱이 고른 검수들이 그 뒤로 줄을 섰다. 사천세가의 짐수레에는 약상자와 독을 구분하는 붉은 매듭이 걸려 있었다. 가주 당효진은 출정하는 장로 당유백에게 매듭을 바꿔 달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출정한 사람은 문파와 세가마다 겨우 수십 명이었다. 전장에서는 누구도 삼만 명의 빈자리를 혼자 채울 수 없었다.

화산의 2대 제자 전유(田裕)는 발이 불편한 사형에게서 물려받은 검집을 찼다. 1대 제자 백소진은 길에서 젖은 짚신을 갈아 신으라 했지만 전유는 “곤륜 애들이 보면 우릴 산길도 못 걷는다고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백소진이 되물었다. “남에게 보일 검과 네 발 중 어느 쪽으로 돌아올래?” 전유는 대답 대신 새 끈으로 검집을 고쳐 묶었다.

곤륜의 장로 서담은 출정 전날 마원정에게 제자들의 동선을 다시 그려 보였다. 가파른 고개를 먼저 넘어 화산보다 앞서겠다는 지시가 있었다. 서담은 “하루 앞선 이름을 장계에 올리려다 뒤의 의원 수레를 잃으면 누구 공이 됩니까?”라고 물었다. 마원정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길을 두 개로 나누시오. 다만 다른 문파에게 우리가 돌아섰다는 말은 듣지 않겠소.” 서담은 살아 돌아오는 길을 고르면서도 산문이 지는 싸움처럼 보이지 않게 해야 했다.

형산세가의 호위 형관호(邢寬浩)는 원로 형수백이 건넨 토지 문서를 품에 넣었다가 가주 형무진 앞에서 다시 꺼냈다. “이걸 들고 싸워야 합니까?” 형무진은 “돌아와 읽어도 된다”고 했다. 형수백은 “그 약속을 받아 낼 사람은 지금 출정하는 너희다”라고 맞섰다. 관호는 전장에서 누구를 먼저 구할지 아직 몰랐다. 집안 어른들이 두 사람 모두 자기 편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천의 젊은 호위 당소련(唐昭蓮)은 독침을 숨긴 손목덮개를 찼다. 당효진은 그 물건을 빼앗으려다 당유백의 시선을 받았다. “살아 돌아오는 데 쓰게 하십시오.” 장로가 말했다. 가주는 마침내 덮개를 돌려주었다. “쓰고 나서 누가 다쳤는지는 네 이름으로 적어라.” 당소련은 같은 기술을 배웠어도 전장의 책임까지 가르쳐 준 사람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둔덕의 집결지는 옛 역참과 하천 사이에 있었다. 날짜를 정해 모이라던 명령을 따랐는데도 멀리서 온 행렬은 이틀씩 늦었다. 병부 주사(兵部主事)가 읽는 명부에는 정규 관군 이만 이천과 여러 고을에서 모은 징집 백성 팔천, 합계 삼만 명이 적혀 있었다. 실제로 그 아침 물통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은 그보다 적었다. 늦게 온 사람, 길에서 앓아누운 사람, 같은 이름으로 두 번 적힌 사람을 다시 세어야 했다.

총지휘관은 앞선 패전의 책임을 진 지휘사 한무경(韓武敬)이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물었다. “삼만을 한꺼번에 전진시킬 길이 어디 있나.”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강가의 길은 수레 두 대가 간신히 비켜 갈 폭이었다. 한무경은 먼저 각 부대가 설 자리와 우물 순서를 정하게 했다. 한 번 서두른 대가를 치른 사람의 명령이었다.

전투부대 이만 명은 도독첨사 조경산(趙景山)이 맡았다. 명령을 크게 외치는 것보다 전달받은 병사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지 확인하는 장수였다. 그 밑에 장창과 짧은 창을 든 육천, 방패와 도를 쥔 사천, 활과 노를 맡은 사천, 말을 탄 삼천, 빈틈을 메울 예비대 삼천을 두었다. 정규군이 줄과 지휘를 잡고 새로 징집된 사천이백 명을 창과 방패, 예비대 사이에 나누어 섞었다. 강호의 고수들은 지형 안내와 급박한 구출에 배속되었으나, 스스로 관군의 명령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보급부대 오천 명은 좌참장 나계풍(羅桂風)이 맡았다. 왼손 가운데손가락 끝이 없어 묶인 자루를 만져 무게를 짐작했다. 징집 백성 이천육백 명이 여기에 들었다. 나계풍은 식량, 화살, 물, 말먹이를 각각 다른 표로 세고, 수레가 멈추는 자리까지 표시했다. “싸우는 자가 하루 굶으면 다음 날은 나까지 싸워야 한다.” 그의 농담을 듣고 웃는 사람은 드물었다.

정보부대 이천 명을 이끄는 유격장 전백린(田伯麟)은 정찰병과 통역, 길잡이를 둘씩 짝지었다. 전령이 돌아오지 않으면 소문이 먼저 도착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다. 강호인 일부도 이 부대의 안내를 받았지만,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보고를 생략할 수는 없었다. 방어부대 삼천 명의 지휘는 천호 강이준(姜以俊)에게 맡겼다. 그 아래 새로 징집된 천이백 명은 말뚝을 박고 물길을 지키며 후송로를 열었다. 강이준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퇴각할 길을 두 군데 그려 놓았다.

아우의 마을 열일곱 명은 처음에는 수레를 끌라는 명부에 함께 묶여 있었다. 재편 때 서리가 열 명을 보급으로, 한 명을 방어로 보냈다. 아우와 소호, 석두, 대산, 삼복, 마칠 다섯은 전투부대에 남았다. 대산은 절뚝이는 다리로 보폭을 맞춰 보인 뒤에야 남을 수 있었다. “저 녀석은 아직 열다섯입니다.” 촌장이 뒤늦게 말하자 서리가 답했다. “그래서 맨 앞이 아니라 뒤에 세운다.”

그들이 들어간 것은 창을 쓰는 여러 백호소 가운데 하나, 백호 최명달(崔明達)이 이끄는 새 편제였다. 기록에는 한 백호소를 백여 명 남짓으로 적었지만, 최명달은 정규군과 징집병의 인원수를 따로 불렀다. 아우와 다섯 사람은 열두 명 안팎의 작은 기에 배속되어 선임 병사 두 명과 함께 섰다. 깃발과 북소리, 구령을 놓치면 옆 기의 사람을 적으로 잘못 볼 수 있었다. 아우는 같은 마을 여섯이 남았다는 안도감이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