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장이 명부를 다시 펼친 것은 동이 트기 전이었다. 아우의 마을에서 나갈 사람은 열일곱. 마당에는 열여덟 켤레의 신발이 놓였다. 아우의 어머니가 그의 젖은 짚신을 말려 두었다가, 헤진 것을 보고 제 신발까지 내놓은 탓이었다.
“이건 어머니 신발이잖아요.”
“네가 신을 것만 가져가.” 어머니는 아우의 보따리에 바늘과 실을 밀어 넣었다. 먹을 것이 될 만한 것은 마른 콩 한 줌뿐이었다. 아우는 대답 대신 끈을 두 번 감아 묶었다. 검은 옥패는 안감에 꿰매 두었다. 진노야는 발길이 끊어지는 고개까지 따라왔지만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았다. 아우가 걷다가 발을 헛디디자 지팡이 끝으로 흙을 툭 쳤다. 아우는 몸을 비켜 세우고 다시 걸었다.
가장 먼저 따라붙은 진소호(陳小虎)는 열여섯이었다. 왼쪽 눈썹이 반쯤 비어 있었고 웃으면 덧니가 먼저 나왔다. 늘 아우보다 빨리 달렸으나 겁나면 말이 많아졌다. “돌아오면 우리 집 닭은 네가 잡아라. 난 이제 못 잡겠다.” 소호는 빈손인데도 허리춤을 만지작거렸다.
유석두(柳石斗)는 열일곱, 아우와 함께 개울에서 돌을 주워 물수제비를 뜨던 친구였다. 손등에 얼룩 같은 검은 점이 있고 몸이 길쭉했다. 걸음은 빠르지만 멀리 있는 글씨를 잘 못 봤다. 그는 명부를 읽는 서리에게 자기 이름을 두 번 확인했다. 빠졌기를 바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신 끌고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형이라 부르던 오대산(吳大山)은 스물둘이었다. 농기구를 만들다 데어 오른손 엄지 밑에 희끗한 흉터가 있었다. 어깨가 넓었지만 절뚝이는 왼다리 때문에 긴 행군에는 뒤처졌다. “내가 수레 쪽으로 빠지면 너희 짐은 내가 보겠다.” 그의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가 돌아서는 순간에야 치마 끝을 움켜쥐었다.
곽삼복(郭三福)은 스물넷, 코뼈가 한 번 어긋난 뒤 웃는 얼굴도 사나워 보이는 형이었다. 집에서는 병든 동생에게 약을 먹이고, 마을에선 힘센 사람부터 앞으로 세우자고 말하곤 했다. 마칠(馬七)은 스무 살로, 목 왼편에 작은 점 셋이 줄지어 있었고 한쪽 귀가 추위에 빨개졌다. 남의 지붕을 고치고도 품삯을 끝내 받지 못하는 성미였다. 그는 떠나기 전 자기 지붕의 구멍을 막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머지 열한 사람도 각자 다른 얼굴을 하고 섰다. 촌장은 이름 옆에 짧은 획 하나씩 그었다. 열일곱 획이 채워지자 누가 맡을지 정하지 못한 밭과, 서둘러 묶은 문짝들이 남았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던 어머니 하나가 열여덟 번째 사람을 찾듯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더 오지 않았다.
고개 너머 길에서는 이웃 마을 행렬과 합쳐졌다. 물레를 고치던 사내가 손에 기름때를 묻힌 채 걷고, 아이 둘을 맡길 곳이 없던 홀아비가 이웃에게 집 열쇠를 던졌다. 부잣집 아들은 대리로 나온 품꾼에게 새 짚신을 신겼다. 품꾼은 자기 이름 대신 주인의 성이 적힌 쪽지를 들고 있었다. 아우가 그것을 보자 서리는 쪽지를 빼앗아 접었다. “가서 따져. 여기서 멈추면 네 마을이 한 명을 더 낸다.”
행렬은 사흘 뒤 넓은 둔덕의 집결지로 들어갔다. 바람에 깃발이 여럿 엇갈렸다. 누구의 깃발 아래 서야 하는지 몰라 사람들이 발을 멈추자, 뒤에서 온 말이 짐수레의 멍에를 부딪쳤다.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아우는 그제야 이 열일곱 명이 아직 한 부대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