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09 · 초고

열일곱 개의 빈자리

마을마다 한 줄씩 사라지고, 저마다 다른 이유로 전장에 간다.

촌장이 명부를 다시 펼친 것은 동이 트기 전이었다. 아우의 마을에서 나갈 사람은 열일곱. 마당에는 열여덟 켤레의 신발이 놓였다. 아우의 어머니가 그의 젖은 짚신을 말려 두었다가, 헤진 것을 보고 제 신발까지 내놓은 탓이었다.

“이건 어머니 신발이잖아요.”

“네가 신을 것만 가져가.” 어머니는 아우의 보따리에 바늘과 실을 밀어 넣었다. 먹을 것이 될 만한 것은 마른 콩 한 줌뿐이었다. 아우는 대답 대신 끈을 두 번 감아 묶었다. 검은 옥패는 안감에 꿰매 두었다. 진노야는 발길이 끊어지는 고개까지 따라왔지만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았다. 아우가 걷다가 발을 헛디디자 지팡이 끝으로 흙을 툭 쳤다. 아우는 몸을 비켜 세우고 다시 걸었다.

가장 먼저 따라붙은 진소호(陳小虎)는 열여섯이었다. 왼쪽 눈썹이 반쯤 비어 있었고 웃으면 덧니가 먼저 나왔다. 늘 아우보다 빨리 달렸으나 겁나면 말이 많아졌다. “돌아오면 우리 집 닭은 네가 잡아라. 난 이제 못 잡겠다.” 소호는 빈손인데도 허리춤을 만지작거렸다.

유석두(柳石斗)는 열일곱, 아우와 함께 개울에서 돌을 주워 물수제비를 뜨던 친구였다. 손등에 얼룩 같은 검은 점이 있고 몸이 길쭉했다. 걸음은 빠르지만 멀리 있는 글씨를 잘 못 봤다. 그는 명부를 읽는 서리에게 자기 이름을 두 번 확인했다. 빠졌기를 바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신 끌고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형이라 부르던 오대산(吳大山)은 스물둘이었다. 농기구를 만들다 데어 오른손 엄지 밑에 희끗한 흉터가 있었다. 어깨가 넓었지만 절뚝이는 왼다리 때문에 긴 행군에는 뒤처졌다. “내가 수레 쪽으로 빠지면 너희 짐은 내가 보겠다.” 그의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가 돌아서는 순간에야 치마 끝을 움켜쥐었다.

곽삼복(郭三福)은 스물넷, 코뼈가 한 번 어긋난 뒤 웃는 얼굴도 사나워 보이는 형이었다. 집에서는 병든 동생에게 약을 먹이고, 마을에선 힘센 사람부터 앞으로 세우자고 말하곤 했다. 마칠(馬七)은 스무 살로, 목 왼편에 작은 점 셋이 줄지어 있었고 한쪽 귀가 추위에 빨개졌다. 남의 지붕을 고치고도 품삯을 끝내 받지 못하는 성미였다. 그는 떠나기 전 자기 지붕의 구멍을 막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머지 열한 사람도 각자 다른 얼굴을 하고 섰다. 촌장은 이름 옆에 짧은 획 하나씩 그었다. 열일곱 획이 채워지자 누가 맡을지 정하지 못한 밭과, 서둘러 묶은 문짝들이 남았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던 어머니 하나가 열여덟 번째 사람을 찾듯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더 오지 않았다.

고개 너머 길에서는 이웃 마을 행렬과 합쳐졌다. 물레를 고치던 사내가 손에 기름때를 묻힌 채 걷고, 아이 둘을 맡길 곳이 없던 홀아비가 이웃에게 집 열쇠를 던졌다. 부잣집 아들은 대리로 나온 품꾼에게 새 짚신을 신겼다. 품꾼은 자기 이름 대신 주인의 성이 적힌 쪽지를 들고 있었다. 아우가 그것을 보자 서리는 쪽지를 빼앗아 접었다. “가서 따져. 여기서 멈추면 네 마을이 한 명을 더 낸다.”

행렬은 사흘 뒤 넓은 둔덕의 집결지로 들어갔다. 바람에 깃발이 여럿 엇갈렸다. 누구의 깃발 아래 서야 하는지 몰라 사람들이 발을 멈추자, 뒤에서 온 말이 짐수레의 멍에를 부딪쳤다.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아우는 그제야 이 열일곱 명이 아직 한 부대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