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훈련의 마지막 북이 울렸을 때, 서쪽 둔덕에는 아직 아홉백 명 남짓이 있었다. 아우가 속한 백호소와 징집된 다른 마을 사람들, 늦게 도착한 방패병들이 창을 거두고 물을 기다렸다. 본영의 큰 불빛은 하천 너머에 보였다. 그쪽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가까운 것 같아도, 수레가 건널 다리는 하나뿐이었다.
어둠이 내려오자 빈 수레 두 대가 물을 싣고 온다며 둔덕 아래 섰다. 보초가 수레 덮개를 젖히기 전, 맞은편 갈대에서 새 한 마리가 연달아 세 번 울었다. 전백린의 정찰병이 멀리서 들은 신호였으나 누구의 신호인지 보고하러 돌아올 길이 막혀 있었다. 수레 바닥의 사내가 먼저 보초의 목을 찔렀다. 그는 크게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좁은 다리에 마른 짚과 기름을 실은 수레가 걸렸다. 불이 붙자 본영으로 달릴 전령들의 말이 뒷발을 들었다. 반란군의 정찰조가 길을 표시하고, 그 뒤에 갈수인(葛秀仁)이 이끄는 기습병 오백 명가량이 둔덕 양쪽에서 내려왔다. 정찰대가 길을 찾아 연 공격이었다. 삼만의 본영을 칠 병력은 아니었으나, 이 외곽의 사람들은 잠시 본영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방패 앞으로!” 백호 최명달이 소리쳤다. 저녁 밥그릇을 놓지 못한 신병이 일어서다 첫 화살에 맞았다. 옆 병사가 그를 끌자 창을 세울 자리가 비었다. 두 번째 화살은 그 빈 곳을 지나 뒤의 물통을 든 징집병 등으로 들어갔다. 등에서 나온 피가 물과 섞였다. 누가 밥그릇을 발로 찼다. 쏟아진 죽에 사람들이 미끄러졌다.
최명달은 바깥의 정규 병사를 둘로 나누어 창을 맞대게 했다. 방패 하나가 없어서 군량 수레의 문짝을 떼어 세웠다. 신병들은 문짝 뒤에 다섯이나 몰려 누가 손을 올려야 하는지 몰랐다. 최명달이 한 사람씩 팔을 붙잡아 창을 내밀 자리에 세웠다. 그동안 반란군의 화살은 둔덕 아래 마른 풀에 박혔고, 넓은 불빛을 피해 낮게 달려온 도병들이 수레 사이로 들었다.
아우는 어두운 사람의 얼굴보다 먼저 그 사람이 밟는 짚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작은 소리였는데 다음 순간 칼이 방패를 내려쳤다. 쿵. 앞줄의 선임이 제 몸으로 신병을 밀어냈다. “놔!” 아우는 누가 무엇을 놓으라는지 몰랐다. 손에 든 창인지, 소호의 옷인지, 이 자리에 서 있으려던 생각인지. 그가 망설이는 동안 석두 쪽 기둥에서 비명이 났다.
돌담으로 물러날 때에는 아우가 석두의 오른팔을 쥐고 있었다. 뒤의 대산은 손에 피가 묻어 창을 놓쳤고, 소호는 돌아볼 때마다 갈대 속의 움직임을 적으로 착각했다. 반란군은 본영이 아니라 다리를 끊고 흩어진 훈련병을 치려 했으므로, 좁은 길을 오래 붙들지 않았다. 최명달은 그 사실을 알고도 먼저 떠나지 못했다. 부상자를 마지막으로 한 명 더 보내는 데 드는 순간이 그의 전부였다.
아우는 소호의 옷깃을 붙잡고 서 있었다. 진노야가 가르친 첫발은 머리에서 떠올랐으나 발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화살이 하나 더 날자 소호가 아우를 밀었다. 뒤에 있던 석두가 손등의 점이 있는 왼손으로 나무기둥을 짚었다. 말에서 내린 반란군 병사가 기둥 너머로 도를 내리쳤다. 석두의 손이 기둥을 놓쳤다. 팔 아래로 피가 쏟아졌다.
“석두야.” 아우가 불렀다. 이름이 입에서 나왔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산이 아우를 밀치고 석두를 안아 끌었다. 마칠은 벗어 둔 천을 주워 상처를 눌렀다. 피가 천을 적시자 구대흥이 달려와 더 단단한 천을 건넸다. “정신 붙들어. 의원에게 가야 해.” 석두는 대답하는 대신 아우를 보았다. 아우는 그 눈을 마주치고서야 무릎을 굽혔다.
곽삼복이 길을 막으러 선 방패병 둘과 함께 창을 들었다. 그의 팔꿈치가 떨렸다.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 가운데는 지난번 관군에게 곡식을 빼앗긴 고을의 사내도 있었다. 그 사내 역시 창끝을 앞에 둔 채 겁먹은 얼굴이었다. 삼복이 창을 뻗는 순간, 다른 기습병의 칼이 방패병의 목덜미를 그었다. 삼복은 물러서다 시체 위에 넘어졌다. 그가 짚은 따뜻한 피 때문에 손이 미끄러졌다.
최명달은 다리 쪽의 불을 보고 퇴각로를 바꿨다. “우물 뒤 낮은 돌담으로. 부상자 먼저!” 대열의 절반은 말을 듣지 못했다. 북과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 살려 달라는 소리가 하나로 겹쳤다. 최명달은 자기 백호소의 선임 병사 스무 명 남짓을 모아 좁은 통로를 막았다. 첫 줄이 쓰러지면 그 뒤 사람이 한 걸음만 전진했다. 그는 아우 일행에게 소리쳤다. “뛰어. 뒤돌아보지 마.”
돌담을 넘은 아우는 뒤돌아봤다. 최명달의 창이 한 번 보이고 불빛 뒤로 사라졌다. 아우는 석두의 상하지 않은 팔을 잡았다. 소호와 대산이 다리를 받쳤다. 마칠이 앞에서 길을 열었다. 누구도 그날 아침 자기 마을을 떠날 때처럼 같은 걸음으로 걷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