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영의 다리를 건너온 첫 사람은 불을 끄는 병사가 아니었다. 청성 장로 현죽도인 조명원이 이끄는 검수들이 젖은 겉옷을 얼굴에 두르고 왔다. 그는 좁은 둑에서 칼을 크게 휘두르지 않았다. 칼등으로 달려드는 창대를 밀고, 손목이 열리는 순간 한 번 짧게 베어 길을 냈다. 상대가 쓰러지자 뒤의 검수에게 맡기고 다음 병사의 등을 가렸다. 화산의 유청림은 갈대 사이로 빠진 신병 셋을 찾아냈다. 제자에게 명령했다. “뒤쫓지 마라. 누운 사람부터 건져.”
사파의 귀도 섭구를 따르는 몇 사람이 불붙은 수레 너머에서 물러났다. 그들이 관군을 끌어들인 길을 알고 있었으므로, 강호인들도 무작정 추격할 수 없었다. 갈수인은 서쪽 갈대에 다시 불을 붙이고 군을 거뒀다. 기습은 길지 않았다. 다만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에게는 밤 전체였다.
아우 일행이 석두를 내려놓자 형산세가에서 온 의원이 팔의 상처를 살폈다. 아우는 “괜찮아질까요?” 하고 물었다. 의원은 대답 대신 피와 흙이 묻은 천을 걷어 냈다. 어깨까지 감각이 남은 자리와 남지 않은 자리를 확인하고, 곁의 의원에게 뜨거운 물과 깨끗한 천을 청했다. 새벽까지 석두의 숨이 붙어 있었지만, 망가진 왼팔은 살릴 수 없었다. 의원이 팔을 절단해야 산다고 설명할 때 석두는 눈을 감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우리 집에는 내가 써야 할 낫이 있는데.” 아우는 ‘내가 대신 하겠다’는 말을 삼켰다. 그 약속을 언제 지킬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사람을 세는 데 날이 밝았다. 외곽 훈련장과 다리 주변에서 군인과 징집병 이백 명 남짓이 돌아오지 못했다. 살아 나온 사람 가운데도 이름을 대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최명달과 함께 돌담 앞에 남았던 선임 병사들은 대부분 발견되지 않았다. 최명달의 창만 다리 난간 아래 걸려 있었다. 한무경은 패전 장계에 숫자와 함께 그가 연 퇴각로를 적으라고 했다.
아우는 화산의 유청림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친구를 살려 주셔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산세가의 젊은 자제 형관호가 지나가며 피 묻은 짚신을 피했다. “창 하나 똑바로 못 세워 고수들이 네 뒤를 지키게 했구나. 돌아가서 들판이나 갈아.” 그는 어젯밤 전장에 뒤늦게 도착해 부상자를 날랐던 사람이다. 아우는 그 손의 피를 보았기에 맞받아치지 못했다. 진심으로 사람을 구했어도 남을 업신여길 수 있다는 것이 더 아팠다.
유청림이 형관호의 등을 보고 말했다. “그 아이가 무엇을 겪었는지 네가 다 봤느냐.” 형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청림은 아우에게도 쉬운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네가 산 것은 남들이 널 끌어냈기 때문이다. 기억해라. 다음에는 네 옆에 설 사람도 같은 일을 겪는다.” 아우는 그 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장막 뒤편에서는 곡철위가 갈수인을 불러 세웠다. 반란군 쪽도 아군의 부상자를 나르고 있었다. “정찰만 하라 했다. 왜 저녁 훈련장을 쳤나.” 갈수인은 수레와 다리에 붙인 불을 전공처럼 말했다. 곽지평이 끼어들었다. “그 안에는 끌려온 농민이 있었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야.” 갈수인은 “창을 든 순간 병사”라고 맞섰다. 곡철위는 다음 작전에서 갈수인의 지휘권을 거두고 죽은 자와 노획한 곡식의 장부를 가져오라 명했다. 윤도겸은 그 장부가 와도 죽은 사람에게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아우는 저녁에 빈 연병장으로 갔다. 땅에 그은 선 너머로 첫발을 옮겼다. 발끝이 헛돌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선을 그었다. 그는 석두의 남은 팔을 떠올렸지만 더 빠르게 강해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도 살아서 일어나 한 번 더 해 볼 수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