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언덕 전투를 치른 이틀째 밤, 총지휘관 한무경의 천막 바닥에는 세 장의 지도가 놓였다. 전백린이 갈대밭을 가리켰다. “기병 흔적은 북쪽인데 굴러간 갈대는 남쪽입니다. 보르테무르가 어느 쪽을 고를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조경산은 도랑을 발끝으로 짚었다. “기병을 잡으러 좌익을 늘리면 가운데가 얇아진다. 하문량은 그때 언덕에서 창대를 내릴 거요.” 군량을 맡은 나계풍은 수레가 지나갈 마른 길에 작은 돌을 놓았다. “이 길을 빼앗기면 싸움에서 이겨도 내일 먹일 것이 없습니다.”
방어부대장 강이준은 군을 둘로 갈라 언덕과 도랑을 동시에 누르자고 했다. “우리에겐 저들보다 사람이 많습니다.” 조경산은 두 손바닥을 붙였다가 좁은 길 위에서 서로 밀어냈다. “갈대밭과 물길 사이로는 앞줄만 갑니다. 뒤의 만 명은 앞사람의 등을 볼 뿐이에요. 둘로 갈라 놓으면 언덕의 적은 한쪽만 친 뒤 빠질 겁니다.” 전백린은 이틀 전 야간 정찰을 더 하자고 했으나 한무경은 기한을 보았다. 피란민을 강 건너에 남겨 둔 채 식량도 넉넉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도 선택이었고, 그 값을 치를 사람 역시 따로 있었다.
화산 장로 나운백이 부름을 받고 들어왔다. “갈대밭으로 내 검수들을 보내면 기병의 옆을 끊을 수 있소.” 강이준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 열댓으로 수천의 말을 어떻게 막습니까. 방패병을 넓게 세우고 장로들은 뒤에서 돌파할 때를 기다려야지요.” 나운백의 얼굴이 굳었다. “그럼 방패 앞에 선 병사들로 화살을 다 받고, 우리를 아끼겠다는 말입니까?”
“고수 열댓이 앞에서 죽으면 뒤의 창병 천 명이 기병을 멈출 손을 잃습니다.” 한무경이 답했다. 그는 장계를 쓰듯 침착하게 말했으나 손끝으로 눌러 둔 종이가 접혔다. “그렇다고 방패병에게 죽으라고 명령할 수도 없소.” 조경산은 앞줄에 방패를 두 겹으로 나누고, 후송 틈을 열 때마다 줄을 바꾸자고 했다. 강이준은 “한 줄이 물러날 때 저쪽 말이 들어오면?”이라고 되물었다. 조경산은 “예비대를 그 한 걸음 뒤에 묶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예비 삼천을 곧바로 돌격에 쓸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계풍은 각 대열에 나눠 줄 물의 양을 다시 계산했다. 방패병이 쓰러지는 수를 그려 넣으려다 숫자 아래의 빈 여백을 보았다. 자기 고향에서는 장마가 나면 온 동네가 수레를 밀어 물길을 건넜다. 그때는 누가 먼저 발을 담그든 저녁에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전쟁의 장부에는 저녁에 돌아오지 못할 사람을 쓰는 칸이 있었다. 그는 “교대할 줄과 들것 길을 지도에 먼저 그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결론은 어느 쪽의 승리도 아니었다. 앞줄의 창과 방패가 기병의 속도를 늦추고, 궁수는 언덕 뒤 창병을 견제하며, 고수는 빈 틈이 생길 때만 돌파한다. 조경산은 북 두 번을 예비대의 이동 신호로 정했다. 나운백은 더 빨리 들어갈 수 있다며 불만을 삼켰고 강이준은 앞줄이 북 두 번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심했다. 한무경은 두 사람의 말을 모두 장계에 적었다. 작전도를 접은 뒤에도 누구 하나 승리할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우가 처음 사람을 찌른 전투에서 사흘 뒤, 두 군대가 마른 벌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명군은 전투부대 이만 명을 세 겹으로 나누었다. 앞줄의 방패와 창, 그 뒤의 궁수와 쇠뇌병, 좌우의 기병과 뒤에 남겨 둔 예비대. 나머지 보급·방어·정보 병력은 물길과 수레가 지나는 길을 지켰다. 반란군은 팔천 남짓이었으나 언덕과 갈대밭을 먼저 차지했다. 숫자가 많은 쪽이 한꺼번에 맞붙을 수 없는 땅이었다.
멀리서 보면 명군은 곧게 뻗은 검은 띠였고, 반란군은 언덕을 따라 굽은 세 줄이었다. 가까이 들어가자 사람은 저마다 다른 걸 했다. 신병은 투구끈을 다시 묶고, 선임은 말이 놀라지 않게 방패를 두드리지 말라고 했다. 아우는 닦아 둔 창자루를 쥐었다. 손바닥이 며칠 전 찌른 사내의 무게를 기억하고 있었다.
언덕 위의 반란군이 먼저 깃발을 눕혔다. 화살 수천 발이 한꺼번에 날아온 듯 하늘에 검은 점이 번졌다. 실제로는 몇 차례로 나누어 쏘는 것이었지만 아래서 올려다보는 병사에게는 끝없는 한 번이었다. 화살이 방패에 탁탁 박혔다. 목재가 갈라지고, 뒤에 선 노병의 현이 팅 하고 울었다. 명군 궁수가 응사하자 양쪽 사이의 빈 땅에 깃대와 사람과 말이 차례로 넘어졌다.
전투대장 조경산은 큰 밤색 말을 타고 우익 뒤를 돌았다. 투구와 갑옷 아래로 얼굴만 드러난 그는 장검을 뽑지 않고 먼저 깃발을 가리켰다. “창병은 고정. 기병은 북 두 번 뒤에만 나가라.” 반란군의 보르테무르는 더 큰 검은 말을 몰고 갈대밭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나타난 곳은 조경산이 바라보던 우익이 아니라 왼편의 얕은 도랑이었다.
말발굽이 진흙을 깨는 둔탁한 소리가 북소리를 삼켰다. 보르테무르의 도가 앞줄 방패의 끈을 끊었다. 서걱. 뒤따른 기병이 벌어진 틈으로 말머리를 밀어 넣자 창병 하나가 “크아악!” 하고 허리를 접었다. 그의 비명은 다음 말이 뛰어넘을 때 끊겼다. 명군의 좌익 깃발이 뒤로 흔들렸다. 누군가 후퇴하라고 외쳤으나 본대의 북은 그대로였다. 두 명령 사이에서 병사들이 서로 등을 밀었다.
강만수는 아우의 조를 도랑 위가 아니라 수레가 빠질 수 있는 좁은 길에 세웠다. “말이 아니라 말의 옆을 봐. 따라 뛰지 마.” 창을 낮게 모으자 먼저 달려오던 기병이 고삐를 당겼다. 그 뒤의 사람이 그 말을 피하느라 속도를 잃었다. 아우는 창을 내밀었지만 맞히지 못했다. 대신 뒤로 달아나려던 신병의 어깨를 붙잡아 제자리로 돌렸다. 소호가 그 옆에 섰다. 둘 다 다리가 떨렸다.
반란군의 하문량이 언덕에서 창병을 내려 보냈다. 명군 좌익이 기병을 막는 동안 가운데가 앞으로 쏠린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누렇게 마른 풀 위로 창끝이 하나의 벽처럼 움직였다. 도병이 맞붙자 쩡, 쩡, 금속 소리 아래로 푹, 젖은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넘어지는 사람을 밟지 않으려 옆으로 피한 병사의 자리에 다시 다른 병사가 쓰러졌다. 명군 예비대는 아직 뒤에 있었다. 조경산이 너무 일찍 그들을 쓰면 반란군의 두 번째 기병을 막을 것이 없었다.
조경산은 좌익의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한무경이 적어 둔 교대 시각을 버렸다. 두 번째 궁수 줄을 앞줄의 왼쪽에 세우면 적어도 후송 통로는 남았다. 하지만 예비대를 아직 움직이지 않으면 방패병은 더 죽고, 지금 움직이면 보르테무르가 돌아올 때 막을 창이 없었다. 그는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가 하나를 내렸다. 전령은 “북 두 번입니까?”라고 물었다. “아직 아니다. 왼쪽 방패를 바꾸고 부상병부터 빼.” 전령이 달려가는 동안 조경산은 그 명령으로 늦춰진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때 화산 장로 적송검 나운백이 흰 이마의 검은 전투마를 타고 좌익으로 달려왔다. 말은 화살이 떨어지는 쪽을 향해 달리려 하지 않았다. 나운백이 고삐를 짧게 쥐고 말목을 돌렸다. 그의 호위들이 방패를 들고 양옆을 좁혀 주었다. 화살 하나가 어깨갑옷을 스치고 다른 하나가 말안장에 박혔다. 나운백은 내려앉은 몸을 세우며 「적송삼락」의 첫 검을 위에서 비스듬히 그었다. 기병의 긴 도와 검이 카앙 하고 맞았다. 두 번째 검은 도를 쥔 손을 노렸고, 세 번째는 적의 깃대 줄을 끊었다.
깃발 하나가 쓰러졌다고 수천의 반란군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깃발을 보며 돌아 들어오던 기병들이 잠깐 방향을 잃었다. 곤륜 장로 백운수 서담이 모래빛 말을 몰고 좁아진 틈으로 들어왔다. 그의 「백운절영」은 허공을 가르는 신비한 한 칼이 아니었다. 말이 지나갈 길을 만들기 위해 먼저 옆의 긴 창을 검등으로 내리고, 뒤따르는 제자들이 그 한 걸음을 넓혔다. 서담은 가슴까지 올라온 화살을 보고도 말머리를 틀지 않았다. 제자의 방패에 화살 두 발이 박혔고, 그의 말은 뒷다리를 다쳐 비틀거렸다. 그가 안장에서 뛰어내려 걸어서 전진하자 제자들도 말에서 내렸다.
화산의 유청림은 반대편에서 부상자를 빼내며 나운백에게 “더 깊이 가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나운백이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 더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창병의 보폭보다 앞서면 열린 길이 다시 닫힌다는 것을 보았다. 검을 들어 명군 좌익의 깃발을 가리켰다. 조경산이 기다리던 북을 두 번 쳤다.
무당의 철심도인 오경문은 후위에서 「태극십삼세」의 원을 그리며 달려드는 창을 밖으로 흘렸다. 그의 1대 제자 문청도는 같은 발을 밟되 반원을 끝까지 그리지 않았다. 뒤에 의원이 있다는 것을 보고 창자루를 막아 두 사람을 먼저 보냈다. 오경문은 제자의 짧아진 동작을 눈치챘다. “원래의 초식이 아니다.” 문청도가 답했다. “길을 막지 않으려고 줄였습니다.” 오경문은 더 말하지 못했다.
청성의 조명원은 「현죽연검」으로 낮게 뻗는 도 세 자루를 한꺼번에 받지 않았다. 앞의 하나를 흘리고 1대 제자 허영(許英)에게 두 번째를 맡겼다. 허영이 “화산이 벌써 언덕을 올랐습니다”라고 하자 조명원은 “우린 의원을 지킨다”고 답했다. 그때 청성의 2대 제자 양설(楊雪)이 들것을 메고 달려왔다. 검수로 뽑혀 왔는데 자꾸 들것만 든다는 말에 얼굴을 찌푸리던 아이였다. 양설은 세 번째 도가 의원의 등을 겨누는 걸 보고 스승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들것을 내려 막았다.
형산세가의 형관호는 「평산권」의 낮은 자세로 쓰러진 말의 발길을 피해 수레 아래의 병사를 끌어냈다. 사천의 당소련이 「금사수」의 짧은 침을 도병의 손목에 던져 관호가 일어날 틈을 벌었다. 관호는 “우리 세가의 권법은 사람을 싣고 나오는 데 더 쓸모 있군”이라고 숨을 골랐다. 당소련은 “우린 침을 쓴다고 남을 죽이는 일만 배우는 게 아니에요”라고 했다. 두 집안의 어른들이 자리를 다툰다는 걸 알면서도 둘은 같은 들것의 양끝을 들었다.
전유는 멀리서 허영의 청성검이 화산의 매화검보다 짧고 빠르다고 생각했다. 경무는 곤륜의 큰 궤적이라면 저 수레를 더 빨리 빼낼 수 있다고 우겼다. 세 사람이 입 밖에 꺼낸 것은 서로의 공을 깎는 말이었다. 그러나 다음 화살이 떨어지자 전유가 허영의 등 뒤를 막고 경무가 양설이 든 들것의 길을 열었다. 누가 더 높은 문파인지 결정할 때가 아니었다.
예비대 삼천 명 중 먼저 움직인 병사들이 밀리던 좌익의 옆을 받쳤다. 방패병이 자리를 되찾고, 궁수들이 고수들 머리 위가 아니라 언덕의 뒷줄을 겨냥했다.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보인 두 사람의 돌파를 본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좌익 살아 있다!” 함성은 명령을 대신하지 않았지만 북소리를 들을 힘을 돌려주었다. 강만수의 조도 앞으로 한 걸음, 그다음 한 걸음을 옮겼다. 누가 먼저 나갔는지 모를 만큼 모두가 조금씩 움직였다.
나는 나운백이 부러웠다. 큰 말을 타고 검 하나로 군대의 기세를 바꾸는 사람. 하지만 조금 전 내가 죽인 사내가 눈앞에 다시 떠올랐다. 저 사람은 방금 몇 명을 베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등에 기대어 살고 싶었다. 나를 살려 주는 사람의 손에 피가 묻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 내가 역겨웠다. 곧바로 그를 다시 부러워했다.
전세가 뒤집히자 곡철위가 반란군의 북을 낮게 쳤다. 언덕을 버리고 물길 너머로 물러나라는 신호였다. 보르테무르는 말머리를 돌려 후미를 가렸다. 조경산은 추격 기병을 보내지 않았다. “저쪽도 아직 창대가 있다. 우리 왼편부터 세어라.” 나운백의 검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그가 탄 말의 옆구리에도 상처가 났다. 서담은 말의 다리를 만지며 의원을 불렀다. 누구도 화살을 맞고 무사한 몸은 아니었다.
해가 질 때까지 명군은 쓰러진 병사를 날랐다. 벌판에는 떨어진 팔과 부러진 창자루, 주인을 잃은 말이 섞여 있었다. 아우는 한 병사를 들것에 올리다가 그가 반란군 옷을 입은 것을 알았다. 소호가 잠시 멈추었다. 강만수는 “숨 붙은 사람부터”라고 말했다. 아우가 들것을 다시 들었다. 그날 명군은 땅을 되찾았지만, 밤이 되자 승리의 함성보다 다친 사람들의 신음이 더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