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18 · 초고

처음 찌른 사람

아우와 소호는 전투에서 처음 사람을 죽이고, 살아남았다는 말조차 입에 담지 못한다.

하구 전투에서 열흘 뒤, 강만수의 백호소는 본진 좌익의 방패병 뒤에 배치됐다. 조경산의 전투부대가 낮은 언덕을 넘을 때 반란군 기병이 옆구리를 쳤다. 보르테무르가 탄 검은 말은 보통 병사의 어깨보다 머리가 높았다. 말의 가슴걸이가 찰랑거렸고, 그의 긴 도가 햇빛을 받아 한 번 번쩍였다. “창 내려!” 만수의 고함 뒤에 쇠가 나무를 때리는 소리, 쩡, 퍽, 하고 다른 소리가 겹쳤다.

첫 줄의 창이 말의 걸음을 꺾자 기병들은 옆으로 갈라졌다. 그 뒤를 따라온 보병이 방패 틈에 몸을 밀어 넣었다. 아우의 오른쪽 병사가 “으악!” 하고 무릎을 꿇었다. 방패 아래에 도끝이 박혀 있었다. 소호가 그를 끌어냈고, 아우는 비어 버린 자리에 섰다. 피 묻은 도를 든 사내가 아우 앞으로 왔다. 눈가에 흰 흉터가 있는, 아우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밀어!” 만수의 명령이 들렸다. 아우는 몸을 비킬 곳부터 찾았다. 그러면 뒤의 소호가 맞는다. 손에 쥔 창이 앞으로 나갔다. 푹. 젖은 천을 뚫는 듯한 저항 뒤에 창자루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사내가 아우의 손을 붙잡고 입을 벌렸다. “크아악—” 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아우는 창을 놓지 못하다가 만수가 자루를 잡아당겨 주고서야 뒷걸음질 쳤다.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언덕 위에서는 조경산이 큰 밤색 말을 몰아 흐트러진 방패대 사이를 달렸다. 두껍게 감은 창자루로 적의 도를 밀어내고, 기수에게 돌아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맞은편의 보르테무르는 말의 목을 낮추어 화살을 피했다. 장수들이 말을 탄 채 지나간 자리에서 병사들은 쓰러진 사람을 밟지 않으려 서로 밀렸다. 칼날이 갑옷 끝을 긁는 서걱 소리, 창대가 부러지는 딱 소리, 살려 달라는 목소리가 명령을 가렸다.

소호도 창을 썼다. 아우를 향해 달려오던 반란군 병사를 옆에서 찔렀다. 뒤늦게 힘을 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적의 손에서 도가 떨어졌다. 소호는 그 사람이 넘어질 때까지 자신의 창끝만 바라봤다. 만수가 두 사람을 뒤로 빼고 새 창병을 세웠다. “숨 쉬어. 다음 북소리를 들어.” 소호는 북을 듣지 못한다고 했다. 만수는 그의 어깨를 잡고 북이 울리는 쪽으로 몸을 돌려 주었다.

적이 쓰러진 뒤 소호는 창을 들고 다음 사람을 향해 돌아섰다가 팔이 굳었다. 상대가 죽었다는 걸 확인하려는 듯 같은 자리만 보았다. 만수는 그의 손을 하나씩 떼어 창을 새로 쥐게 했다. “네가 한 일은 끝났다. 아직 네 옆 사람의 싸움이 남았다.” 소호는 그 말을 따랐지만, 대열이 한 걸음 나갈 때마다 뒤를 돌아봤다. 누가 다시 일어날까 봐가 아니었다. 아직 거기에 사람이 누워 있음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아우도 자신이 찌른 사내의 손톱 밑에 검은 흙이 있었던 걸 기억했다. 전날 밭을 갈았을지, 도랑에서 땅을 판 것일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반란군 군복을 입지 않았다면 마을 길에서 그냥 지나쳤을 얼굴이었다. 아우는 자기 손톱에도 같은 흙이 끼어 있는 것을 보았다. 물로 씻어도 손바닥의 무게는 그대로였다.


내가 찌른 사람은 나를 죽이러 왔다. 이 말을 백 번 해도 손바닥에 남은 무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내 손을 잡을 때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호도 살아 있었다. 마칠은 없었다. 그 셋을 한꺼번에 떠올리니 입안에 쓴 물이 고였다.


싸움이 멎자 들판의 풀은 군데군데 눌려 붉게 젖어 있었다. 떨어진 손가락을 찾는 부상병과 움직이지 않는 팔을 자기 것인 줄 알고 끌어안은 병사가 있었다. 의원은 살아 있는 사람부터 옮기라고 소리쳤다. 곽삼복은 아우가 죽인 사내의 얼굴을 가렸다. “보지 마.” 아우는 이미 보았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저녁 배급에서 아우는 숟가락을 들고도 먹지 못했다. 소호가 맞은편에 앉아 죽그릇을 엎질렀다. 둘 다 웃지 않았다. 석두가 오른손으로 그릇을 다시 채워 주자 소호는 “고맙다” 대신 “내가…”까지만 말했다. 그날 밤 아우는 몇 번이고 깨어났다. 창끝에서 사라지지 않던 무게가 빈 손에도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