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 밖 작은 별채에서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문형(諸葛文衡)은 칼 대신 세 장의 지도를 펼쳤다. 그는 호위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할 만큼 무공이 약했다. 하지만 어느 길에 군량을 놓으면 누가 그 길을 지키러 오는지, 어느 문파에 땅을 약속하면 누가 먼저 제자를 보내는지 계산할 수 있었다. 그의 딸 제갈소연(諸葛昭姸)은 붉은 먹으로 두 개의 행군로를 그었다.
황실 내관 장회(張懷)는 “황태자 저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반란의 끝”이라고 했다. 제갈문형은 대답했다. “끝을 정할 자리가 필요하지요. 황제께서는 나라를 세우셨고, 아직 누구에게도 그 권세를 빌릴 생각이 없습니다. 다음 자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는 황태자가 모든 밀약을 안다고 말하지 않았다. 장회 역시 황태자의 이름이 적힌 명령서는 가져오지 않았다. 서로에게 유리한 침묵이었다.
장회가 품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황태자가 따로 알아보라며 보낸, 전투부대의 공을 상세히 적은 보고였다. “저하는 강한 군영을 곁에 두고 싶어 하십니다.” 제갈문형은 그 봉투를 읽고 강만수 부대의 이름 옆에 붉은 표시를 했다. “그러니 앞에 세우면 됩니다. 살아남아 공을 더 세워도 저하의 군대가 되고, 사라지면 다른 사람의 칼을 빌리지 않아도 되지요.”
“저하께서 아시면…” 장회가 말을 멈췄다. 제갈문형은 봉투를 돌려주었다. “저하는 그들이 앞에 서기를 바라셨습니다. 다만 숲에 누가 기다리는지 듣지 못하셨을 뿐.” 방 안의 누구도 그것을 황태자의 명령이라고 쓰지 않았다. 황태자가 지휘한다고 믿는 배치에서 그가 모르는 한 칸을 남겨 두는 방법은 오래된 장부의 주인들이 익혀 온 일이었다.
제갈소연은 아버지가 떠난 뒤 두 지도를 겹쳤다. 한 장에는 황실의 인장이, 다른 장에는 오래된 물길과 잊힌 역참이 있었다. 군대가 갈 길보다 먼저 살아 있는 것은 누가 언제 문을 열어 주는지 적힌 표였다. 그녀는 아버지도 그 표의 처음을 아는 사람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몇 해 동안 제갈세가는 반란군의 곡식길과 관군의 토벌 경로를 서로 다른 손으로 고쳤다. 전쟁은 실제 원한과 굶주림 때문에 이어졌고, 그 틈을 넓힌 자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마교의 독립 무리와 악왕곡에 물자와 통행을 약속했다. 두 세력은 명군을 도울 이유가 없었지만, 황실의 손에서 온 약속임을 알고도 자기 이익을 위해 받아들였다. 반란군 지도자 윤도겸이나 곡철위에게 그들의 전력을 모두 알리지는 않았다.
제갈소연이 물었다. “고수들이 들어오면 우리 선봉도 무너집니다.” 제갈문형은 이름이 적힌 작은 패를 옮겼다. 강만수의 부대가 그 앞에 있었다. “성과가 쌓인 군대일수록 위험한 전장에 보내기 쉽다. 그들이 버텨야 본군이 시간을 번다.” 소연은 패 아래에 마칠과 오대산의 이름이 적힌 낡은 사상자 장부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 장부를 치우지 않았다.
마교의 혈염마군 백리혁(百里赫)과 악왕곡의 곡주 냉혼왕 단유백(段幽伯)은 약속받은 길을 각각 확인했다. 연자희는 백리혁에게 “윤도겸은 아이를 끌어들이는 싸움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백리혁은 “그가 우리에게 명령할 자리는 없다”고 답했다. 단유백은 자기 사람들을 강가 숲에 숨겼다. 두 고수는 반란군의 명분을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이 불일치가 마지막 전투를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
그 무렵 반란군의 낮은 언덕에서도 진형을 놓고 말이 엇갈렸다. 곡철위는 북쪽 고지의 기병을 한눈에 보이게 두고, 앞의 흙둑에는 창병을 적게 세웠다. 윤도겸이 물었다. “가운데를 비우면 저들이 강을 건너올 텐데요.” 곡철위는 “우린 마지막으로 한 번 부딪힌 뒤 흩어질 길이 필요합니다. 농민병까지 전멸시켜 성을 지킬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했다. 기병으로 상대의 눈을 북쪽에 묶어 두고, 흙둑에 오른 적을 늦춘 뒤 남쪽 물길로 빠질 계획이었다.
윤도겸은 지도 남쪽 숲에 놓인 검은 패를 집어 들었다. “저 자들은 어느 대열입니까?” “내 지휘를 받지 않는 자들입니다.” 곡철위도 마교와 악왕곡의 정확한 수와 시간을 알지 못했다. 정찰병이 숲에서 쇠사슬 자국을 봤다는 보고가 올라왔으나, 누가 그 길을 약속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윤도겸은 피란민이 물길로 나갈 때까지 숲의 고수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곡철위는 약속할 수 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천막 밖에서는 늙은 병사가 말의 고삐를 깁고 있었다. 곡철위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고삐를 땋아 주며 전쟁보다 말 장터를 물려주겠다고 했던 때를 기억했다. 그 말을 믿고 살던 사람이 자기 안에도 남아 있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그는 흙둑의 창병 이름을 한 번 더 읽었다. 어느 편의 지도든 그 자리는 쉽게 지워지지만,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발을 빼라는 북이 울릴 때까지 거기 서 있어야 했다.
도성에서 올라온 보고를 읽은 주원장은 예정보다 빠른 결전 명령을 보고 눈썹을 좁혔다. 그는 피란민의 길을 먼저 열고 민가를 불태우지 말라는 조항을 친필로 더했다. 내관은 그 명령을 받들었다. 다만 선봉 앞 산길에 새로 들어온 고수의 이름은 보고에 없었다. 황제가 모르는 것이 황제가 어리석다는 뜻은 아니었다. 누군가 보고를 만들 때 그 칸을 비워 두었다는 뜻이었다.
명군 본영의 군의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전백린은 정찰병들이 그린 반란군의 대형을 펼쳤다. 북쪽 고지에는 보르테무르의 기병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보였고, 강 맞은편의 흙둑 중앙은 예상보다 얇았다. 남쪽 숲에서는 사흘 동안 땔감을 태운 연기만 올라왔는데, 정찰 명부에는 주둔 인원이 없었다. “우리를 강 가운데로 끌어들이려는 것 같습니다.” 전백린이 말했다. “그렇다면 보이는 기병은 미끼이고, 숲이 진짜일 수 있습니다.”
강이준은 남쪽으로 먼저 정찰대를 보내 숲을 확인할 때까지 도하를 미루자고 했다. 나계풍은 수레가 들어갈 다리의 폭을 쟀다. “정찰에 하루, 다리를 넓히는 데 하루를 더 쓰면 군량이 먼저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대로 건너면 앞줄이 돌아올 다리가 막힙니다.” 조경산은 강 북쪽의 좁은 흙둑을 가리켰다. “적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 준 것처럼 보일 때는 왜 그랬는지 찾아야 합니다. 일단 선봉이 둑을 잡되, 본대가 물길을 확인하기 전엔 길게 내밀지 맙시다.”
한무경은 도성에서 내려온 봉한 군령을 다시 읽었다. 선봉은 예정된 시각에 도하하여 흙둑을 점령하고, 본대가 다리를 완전히 건널 때까지 자리를 유지할 것. 예비대는 정해진 신호 전에는 강을 건너지 말 것. 피란민 길은 열어 둘 것. 마지막 조항은 황제의 뜻과 같았지만, 선봉의 후퇴와 교대를 막는 문장은 그 뜻이 누구의 계산을 거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정찰 보고에 빈 숲을 두고 선봉을 고정하라는 까닭은 설명되지 않았다.
“저건 흙둑을 뺏으라는 명령이 아니오.” 조경산이 말했다. “강을 건너는 나머지 병력을 위해 앞줄이 죽을 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이지.” 강이준은 “선봉을 물릴 때 그 자리를 대신할 줄이 없으면 본대도 강물 속에서 죽습니다”라고 반박했다. “누군가는 서야 합니다.” 나계풍이 “그 누군가를 왜 만수의 백호소로 이미 정했는지 묻는 겁니다”라고 끊었다. 상을 받은 부대는 잘 버티리라는 말로 가장 위험한 자리에 보내기 쉬웠다. 아무도 그 문장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죽을 병사를 말로만 셈하고 싶지 않았다.
화산 장로 유청림과 청성 장로 조명원이 함께 군의에 들어왔다. 조명원은 “의원을 둑 가까이 보내면 다친 병사를 빨리 데려올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강이준은 “그러면 적 고수가 나타날 때 의원까지 잃습니다”라고 맞섰다. 유청림은 “장로와 일대 제자들이 선봉에 서면 창병을 덜 잃을 겁니다”라고 했다. 조경산은 “상대의 고수 전력을 모르는데 그들을 먼저 보내 전부 잃으면 다음 구멍을 메울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젊은 병사의 목숨이 고수의 목숨보다 가볍다는 말처럼 들리자 유청림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렇게 들렸다면 정확히 말하시오. 누구를 먼저 내보내겠다는 겁니까?”
조경산은 물그릇을 검지로 밀었다. “강만수의 방패와 창이 첫 화살을 받을 거요. 그 뒤에 당신들이 만든 길로 부상병을 뺍니다. 저도 말을 타고 그 줄 가까이에 서겠소.” 조명원은 “그 명령을 그 병사들 앞에서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말해야 합니다.” 누구도 만족하지 않았다. 문파의 제자들은 본산으로 돌아갈 사람이었고, 이름 없는 창병도 집에 어머니와 아이를 두고 온 사람이었다. 어느 쪽을 먼저 살리겠다는 계산은 입 밖에 내는 순간 더 견디기 어려워졌다.
한무경은 군령에 이견을 적어 올리고 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을 한 번 꺼냈다가 거뒀다. 회신은 강보다 늦게 올 것이다. 명령을 거스르면 조경산 대신 다른 장수가 같은 병사를 건너게 할 수 있었다. 그는 도하 시각을 바꿀 권한은 없다고 못 박고, 별도의 보고에 정찰 누락과 이견을 남겼다. 강이준은 다리 양끝에 후퇴 통로를 남기고, 나계풍은 선봉의 방패와 밧줄을 더 실었다. 전백린은 정찰병 둘을 숲 바깥에 숨겼다. 조금 바꾼 준비가 명령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회의가 끝나자 조경산은 고향의 나루에서 저녁마다 들리던 물 긷는 소리를 잠깐 떠올렸다. 어릴 적 그는 전장에 나가면 큰 말을 타고 앞에서 길을 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말 위에서 자신이 먼저 볼 것은 강 건너 죽을 자리를 지키는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강만수를 불러 명령을 전했다. 만수는 “언제 우리를 바꿔 줍니까?”라고 물었다. 조경산은 고개를 들었다. “다리를 건넌 본대가 너희 자리를 받을 때. 그보다 빠르다고 장담할 수 없다.” 만수는 “그 말도 병사들에게 전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