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명군은 강둑을 포기하지 않았다. 조경산은 방어부대 강이준의 병사들을 다리 양쪽에 세우고, 전백린에게 숲의 두 깃발을 직접 확인하라 명했다. 창병은 앞줄과 뒷줄을 바꾸어 쉬었고, 궁수는 아낀 화살을 세 묶음으로 나누었다. 반란군은 피란민 길을 향해 더 나아가지 않았지만, 악왕곡과 마교의 고수들은 새벽에 다시 둑으로 올라왔다. 두 세력은 윤도겸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았다.
날이 밝기도 전에 악왕곡의 도수들이 의원 천막을 노렸다. 서담은 화살 박힌 다리를 땅에 질질 끌며 검수들을 모았다. 청성 제자들은 천막 줄을 끊어 부상자들을 안쪽으로 옮겼다. 조명원은 밤새 숨을 붙들고 있었으나 더는 검을 들지 못했다. “남은 아이들 이름을…” 그가 끝맺지 못한 말에 제자 하나가 피 묻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장로는 이름 둘을 짚고 손을 내렸다. 의원은 그가 죽은 시각을 적었지만, 함께 쓰러진 제자들의 시각은 알 수 없었다.
조명원의 마지막 밤에 양설은 그가 가리킨 두 이름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하나는 막내, 다른 하나는 장로를 부축하다 등 뒤에서 창을 맞은 사형이었다. 산으로 돌아가면 그들의 빈 자리에 누가 설까. 허영은 대답하지 않고 피 묻은 명부를 접었다. 양설은 무공이 조금만 더 강했으면 둘 다 구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가, 자신이 끌어낸 의관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울었다. 살아 있는 이를 구했다는 사실도 죽은 이를 잃었다는 사실도 서로를 지우지 못했다.
단유백이 다시 「악왕쇄혼수」로 곤륜의 앞줄을 눌렀다. 서담은 무릎에 힘이 없어 정면에서 받아내지 못했다. 그는 검으로 단유백의 팔을 막기보다 자기 제자를 옆으로 밀어 화살 구덩이에 엎드리게 했다. 상대의 손바닥이 어깨를 치자 뼈가 꺾이는 소리가 났다. 서담은 쓰러졌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 기병이 수레길을 향해 움직였다. 강이준의 방패병이 그 좁은 길을 두 겹으로 메웠고, 쇠뇌병이 말 앞의 흙을 겨눴다. 말이 방향을 틀면서 기병의 돌격은 늦춰졌다.
유청림은 왼팔에 감은 피 묻은 천을 다시 매고 백리혁 앞에 섰다. 검을 든 것은 오른손뿐이었다. “내 제자들에게서 물러나라.” 백리혁은 대답 대신 사슬을 낮게 돌렸다. 유청림은 첫 날처럼 날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낙매삼절」의 첫 칼로 사슬을 흘리고 곧장 뒤로 빠졌다. 백리혁이 따라 들어온 자리는 궁수들이 미리 정한 거리였다. 화살이 한꺼번에 날아오자 백리혁의 호위들이 방패를 세웠다. 유청림도 엎드렸다. 한 발이 그의 옆구리를 스쳤고, 백리혁의 팔에도 화살촉이 박혔다. 고수는 죽지 않았지만 더는 한 손으로 사슬을 마음껏 돌릴 수 없었다.
그 사이 명군 도병은 방패 뒤에서 한 줄씩 나아갔다. 명군이 기세만으로 이긴 것은 아니었다. 궁수의 사격을 잠깐 멈추고 창병을 보낸 뒤, 다시 사격을 열어 마교 검수의 후퇴 길을 막았다. 북이 두 번 울릴 때마다 앞으로 간 병사와 뒤로 빠진 병사의 자리만 바뀌었다. 아우는 소호와 함께 세 번째 줄에 서서 쓰러진 사람을 밟지 않으려고 발을 고쳐 디뎠다. 창이 사람을 찌르는 푹 소리, 칼이 방패 가장자리를 긁는 서걱 소리가 같은 높이에서 이어졌다.
마교 검수 하나가 신병의 멱살을 잡아 방패 밖으로 끌었다. 아우는 그 손목을 도등으로 치고 신병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다른 검수가 아우의 어깨를 스쳤다. 소호의 창이 그를 밀어냈다. “내가 늘 너만 따라다녀야 하냐?” 소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우는 “이번엔 내가 앞에 설게”라고 답했다. 둘 다 자기가 살인하는 일을 조금 익숙하게 해 버렸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어제는 저들이 너무 강해 내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조명원 장로가 죽었다. 강한 사람도 죽고, 이름을 모르는 제자도 죽었다. 나는 살아남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승리할 수 있다는 함성이 들리자 그 말이 기쁘기도 했다. 이 피 위에서 기뻐하는 내가 아직 낯설고, 그 낯섦을 잃어버릴까 봐 두렵다.
오른쪽 어깨를 천으로 묶은 아우는 강가에서 두 고수가 맞붙던 장면을 되짚었다. 사슬은 한 번 돌 때마다 자기 창 셋이 모여도 막기 어려운 길을 열었다. 곡철위는 그보다 먼저 발을 놓아 그 길을 끊었다. 아우가 본 것 가운데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애초에 저 자리에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만 설 수 있다고 생각하자, 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러다 흙둑 아래에서 살아남은 그 한 걸음이 떠올랐다. 그도 처음에는 돌까지 세 걸음밖에 떼지 못했다. 내가 저들처럼 될 수 있을까. 묻고는 웃음이 났다. 내일 창을 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래도 낫기만 하면 같은 발을 다시 열 번 놓아 볼 수는 있겠지. 그 희망이 초라해서 남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아우는 남은 왼손으로 발의 간격을 짚어 보았다.
정오 무렵 곡철위는 자신의 군을 물길 너머로 물렸다. 백리혁과 단유백이 전열을 더 열겠다고 해도 그는 거절했다. 윤도겸이 지키겠다던 농민의 집과 피란민 길을 두 고수는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반란군이 한 몸처럼 싸울 이유는 거기서 끊어졌다. 조경산은 추격 명령을 기다리던 기병을 멈췄다. 명군 본대에도 쓰러진 병사가 많았고, 추격할 말에게 먹일 곡식은 강 건너에 남아 있었다.
노진백은 하구의 배를 끌고 떠났고, 보르테무르는 걸을 수 있는 기병만 모아 북쪽 길로 흩어졌다. 하문량의 창대 일부는 무기를 내려놓았다. 윤도겸은 농민병을 불러 “내 약속 때문에 더 죽지 마라. 집으로 가라”고 했다. 곡철위는 후미를 가려 부하가 도망칠 시간을 벌고 사라졌다. 백리혁과 단유백도 자기 사람을 데리고 각자 숲으로 빠졌다. 명군은 강과 나루를 차지했지만 반란군 모두를 붙잡지는 못했다. 깃발은 한꺼번에 꺾인 것이 아니라, 더는 같이 설 까닭이 없어 하나씩 사라졌다.
승전 장계가 적히기 전에 조경산은 손실 장부를 먼저 받았다. 선봉의 강만수 백호소 여든아홉 명 중 그날 대열로 돌아온 병사는 서른넷이었다. 스무 명이 의원 천막에 있었고, 서른다섯 명은 전사하거나 찾지 못했다. 본대까지 합치면 명군의 잠정 집계는 전사 천육백여 명, 부상 삼천 명 가까이, 실종 수백 명이었다. 확인된 반란군의 전사자와 포로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숲으로 흩어진 부상자는 셀 수 없었으므로 정확한 양쪽 피해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명군의 전열과 동원 능력이 얼마나 상했는지는 장부만으로도 보였다.
청성은 장로 조명원과 젊은 제자들을 잃었다. 곤륜 장로 서담은 목숨을 건졌지만 팔과 다리를 오래 쓰기 어려웠다. 화산 장로 유청림도 왼팔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살아 돌아온 제자들이 산문을 지킬 인원까지 헤아려야 했다. 조경산이 “각 문파의 손실을 가리지 말고 적으라”고 명하자 호부의 서리는 승리의 문장을 먼저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경산은 서리가 보는 앞에서 두 장계를 따로 봉했다.
허영과 양설은 청성의 검수 명단을 두 번 읽었다. 전날까지 누가 먼저 전공을 세울지 다투던 이름들이었다. 화산의 전유는 백소진의 검집을 고쳐 묶던 새 끈만 찾아냈다. 그는 매화검법을 더 빠르게 쓰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다. 살아 돌아갈 제자들이 백소진에게 배운 간격을 잊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경무는 곤륜의 부상자를 세며 전유와 눈이 마주치자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강만수는 밤늦게 명부의 빈칸을 메웠다. 소호는 물을 갈았고 석두는 오른손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름을 베꼈다. 곽삼복은 살아 있었으나 걸을 수 없었다. 아우는 자기 이름을 찾고 먼저 안심했다. 그다음에야 죽은 사람의 이름을 읽었다. 만수는 그 순서를 꾸짖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남은 일을 시킬 수밖에 없다는 듯 다음 장을 넘겼다.
강이준은 전날 군의에서 적어 둔 이견의 사본과 선봉 유지 명령을 나란히 놓았다. 명령에는 본대가 다리를 건널 때까지 버티라는 말은 있었으나, 숲 정찰병이 돌아오지 않을 때 어디까지 교대를 늦추라는 말은 없었다. “우리가 그 빈칸을 알고도 건넜소.” 그가 말했다. 조경산은 “알았기에 방패와 밧줄을 더 보냈지. 그걸로 충분했다고는 쓰지 마시오”라고 답했다. 한무경은 승전 장계와 별개로 정찰 누락, 현장의 반대 의견, 실제 교대 시각을 적었다.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을 죄인으로 정하지 않은 기록이었다. 그러나 서류가 사라지면 죽은 병사에게 남는 것은 다시 승리의 숫자뿐이었다.
도성에 도착한 첫 장계에는 ‘반란 진압, 주요 나루 회복’이라 적혔다. 주원장은 포로와 피란민의 처우, 문파의 손실, 미리 보고되지 않은 두 고수의 출처를 따로 물었다. 황실 내관 장회는 답변을 준비하며 제갈문형을 찾았다. 제갈문형의 장부에는 토벌 뒤 힘이 줄어든 주력부대와 강호 문파, 마교와 악왕곡에 넘어간 통행권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명군이 이겼습니다.” 장회가 말했다. 제갈문형은 “그렇기에 전쟁을 끝낼 수 있었지요”라고 답했다. 다음 황위를 둘러싼 협상에서 황제와 강호가 서로에게 기대지 못할 만큼 약해지는 것, 그것이 그들의 계산이었다. 다만 조경산의 두 번째 장계가 이미 어전으로 갔다는 사실은 몰랐다.
승리라니. 강은 우리 손에 있고 반란군의 깃발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우리 쪽 들것이 더 많이 지나가는 것을 봤다. 마칠과 대산 형의 물건을 맡은 뒤에도 오늘의 신병들 이름을 받아 적어야 한다.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내가 부끄럽지만, 그 마음을 없앤다고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제 누가 우리를 여기 세웠는지 알고 싶다.
석두가 베낀 군량 날짜와 골짜기의 이동 명령은 강만수의 손에 남았다. 그것만으로 제갈세가의 이름을 말할 수는 없었다. 만수는 아우에게 “남의 죄를 밝히는 일에 죽은 사람을 다시 쓰지 마라. 살아 있는 증거를 찾아라”고 했다. 황실은 안정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내보냈고, 병사들은 해산될 날을 기다렸다. 승리는 나라의 것이었지만, 그 값은 각 집에서 따로 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