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군이 떠난 뒤 세 번 비가 내렸다. 첫 비에는 아우가 물을 반 바가지나 쏟았고, 두 번째 비에는 공터까지 가서도 조금 남았다. 세 번째 비가 그친 날에는 물그릇이 가득 찬 채 우물로 돌아왔다. 진노야는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 뒤로도 아우의 발은 자주 꼬였다. 진노야는 흙에 선을 긋고, 아우가 선을 밟지 않으면서 몸을 돌리게 했다. 밭두렁에서 짐을 지고 걷듯 무릎을 쓰고, 장작을 쌓듯 허리를 세우고, 숨이 차면 멈추었다. 아우가 서두를수록 할 일은 처음으로 돌아갔다.
“어제도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안 할 셈이냐?”
아우는 말없이 물바가지를 다시 들었다. 그 모습에 진노야는 잠깐 웃었다. 무당산의 새벽 뜰에도 처음에는 저렇게 남을 앞지르려 하지 않던 아이들이 있었다. 자소궁 뒤편의 솔바람과 비에 씻긴 돌계단, 종을 치기 전 잠깐 찾아오던 맑은 고요가 떠올랐다. 사람들 사이에 줄과 편이 생기기 전, 그에게 무예는 이 고요 속에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이었다.
진노야는 기억을 접었다. 아우는 무당산을 모른다. 그는 그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헛간에서 지내던 사내는 걸을 수 있게 되자 아우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침에는 물을 길었고, 어머니가 말린 나뭇가지를 묶었다. 상처가 당기는 날에는 앉아서 짚신의 헤진 끈을 고쳤다.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라 하면 그는 “밥값은 해야지요”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가 밤마다 헤아리는 것은 밥값만이 아니었다. 토벌대가 남쪽 길로 떠난 날, 계곡 너머까지 말이 닿는 시간, 반란군을 몰아 돌아올 만한 길. 계산이 맞다면 그들이 다시 이 마을을 지날 날이 머지않았다. 그는 그 전에 떠나야 했다. 자신을 숨겨 준 집에 또다시 군사들의 발길이 닿게 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저녁, 아우가 마당에서 나뭇단을 고르고 있을 때 그가 물었다.
“아우야. 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냐?”
“지금처럼요. 어머니랑 밥 먹고, 나무하고요.”
“그게 전부냐? 하고 싶은 일은?”
아우는 잠시 생각했다. “지붕이 안 새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겨울마다 곡식 걱정을 안 하셨으면 좋겠고요.”
사내는 웃으려다 말았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느냐? 누가 싸우고,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반란군이 있고 관군이 쫓아간다고 들었습니다.” 아우는 나뭇가지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런데 관군이 우리 곡식을 가져갔잖아요. 어느 쪽이 이기면 돌려받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는 어릴 때 뭘 하고 싶으셨어요?”
예전이라면 그는 자기 이름을 말했을 것이다. 그 이름에 딸린 사람들과 지켜야 할 것들을. 이제는 이름을 숨겨야 겨우 살아남는다. 그는 마른 장작 하나를 골라 아우에게 건넸다.
“남들이 내 몫이라고 정한 것 말고, 내가 지킬 것을 정하고 싶었다.”
아우는 그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장작을 받아 들며 말했다.
“저는 아버지 얼굴을 잘 기억 못 합니다. 어릴 때 전쟁으로 돌아가셨다고만 들었어요. 어머니까지 잃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고 싶어요.”
사내는 오래도록 아우를 보았다. 이 아이에게는 큰 뜻도 재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의 곁에 남겠다는 말만큼은 쉽게 물러설 마음이 아닌 듯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껏 누구를 위해 달려왔는지, 그 길에서 누구를 지나쳐 왔는지 처음으로 묻고 싶어졌다.
“아우야.”
“네?”
“네 어머니께 내일은 지붕을 좀 보겠다고 전해라. 비 오기 전에 고쳐 두자.”
그는 아직 떠날 날짜를 아우에게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