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군의 본진에는 깃발이 셋 있었다. 낡은 원군의 푸른 천은 바람을 받으면 끝이 먼저 찢어졌고, 장사성(張士誠)의 옛 군대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천은 소금 자루를 꿰맸던 바늘땀이 남아 있었다. 세 번째는 글자도 없는 삼베였다. 세금을 못 내 논을 잃은 사람들이 그 아래서 밥을 받았다. 관군의 장계에는 이들 모두가 같은 이름, ‘반란군’으로 적혔다.
원군의 남은 병사를 이끄는 보르테무르(博爾特穆爾)는 땀에 젖은 투구를 벗지 않은 채 군량 장부를 보았다. 옛 원의 군영을 떠돌다 남쪽으로 흘러온 병사들과 그 아들들이 그의 주력이었다. “북쪽에서 곡식이 오지 않으면 말부터 굶는다.” 그는 말했다. “강가의 마을에서 가져와라.”
맞은편의 노진백(盧鎭白)은 장사성 휘하의 수군에서 젊은 장교로 싸운 적이 있었다. 패전 뒤 배와 항구를 빼앗겼고, 살아남은 부하와 소금길의 인맥으로 이 진영을 키웠다. “그 마을 사람도 우리 군량을 나른다. 털어 가면 다음 번엔 관군에게 길을 열어 줄 거요.” 노진백은 아랫입술의 오래된 흉터를 엄지로 눌렀다. “나중에 되찾을 땅을 오늘 태울 셈인가?”
“당신이 되찾을 땅?” 진우량(陳友諒)의 옛 군대에 몸담았던 하문량(夏文良)이 웃었다. 그는 한쪽 팔꿈치가 굳어 활을 당기지 못했다. “장사성의 길인지, 우리 옛 한군의 강인지 아직 정한 적 없소.” 노진백은 답하지 않았다. 하나로 뭉치지 않았으면 벌써 각자 쫓겨 죽었을 사람들이었다.
진영 보급을 맡은 곽지평이 장부를 가운데 놓았다. “오늘부터 사흘 치. 말을 먹이면 아이들 죽이 묽어집니다.” 그는 곡식을 빼앗긴 농민들을 받아들였고, 이제는 그들에게서도 몫을 거둬야 했다. 삼베 깃발 아래 있던 사내가 물었다. “우리가 이기면 우리 밭을 돌려주겠습니까?” 대답이 늦어졌다. 곽지평은 그 사내와 눈을 맞춘 채 빈 그릇만 끌어당겼다.
천막 뒤에서 혈월사 연자희와 귀도 섭구가 서로 다른 길로 들어왔다. 그들이 거느린 것은 마교와 사파 전체가 아니라 각자의 작은 무리였다. 섭구는 관군의 집결지와 출발 날짜가 적힌 종이를 펼쳤다. “이쪽이 먼저 건넨 길이다. 우리에게 마을을 치라고 떠미는 것 같군.”
연자희가 말했다. “마을을 치면 황실은 백성을 지킨다는 명분을 얻는다. 저 종이를 준 자들은 관군과 우리 중 누구를 이기게 할 생각도 없어.” 노진백은 종이를 접어 군량 장부 밑에 넣었다. 쓸 만한 정보를 버릴 수는 없었다. 쓰는 순간 누구의 뜻대로 움직이게 되는지도 알았다.
보르테무르가 입을 열었다. “원 왕실의 피가 살아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을 세우면 흩어진 병사들이 돌아올 거다.”
“살아 있다는 말과 당신들 앞에 서겠다는 말은 다르지.” 곽지평이 말했다. “마을 사람을 도운 사내라면, 그 마을을 짓밟고 데려와서는 우리 편이 되지 않을 거요.”
푸른 깃발의 병사 하나가 천막 밖에서 물을 길어 온 농부의 항아리를 받았다. 농부는 그가 명군도 원군도 아닌, 지난겨울 자기 집 문짝을 고쳐 준 사내임을 알아보았다. 둘 다 먼저 인사하지 못했다. 천막 안에서는 마을을 건드리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 명령이 계곡 너머까지 닿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