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이 내려앉는 지점에서 아우는 우물을 먼저 알아보았다. 두레박의 줄이 새것이었다. 누가 그것을 갈았을까 생각하다가, 마을을 나설 때 자기 손으로 당겨 보았던 옛 줄이 떠올랐다. 소호는 길 아래 닭장을 가리키며 “우리 집 닭이 아직 있으면 오늘은 내가 잡는다”고 했다. 석두가 “너 그 말을 떠날 때도 했어”라고 대꾸했다. 둘은 웃었지만 아우는 몇 걸음 더 내려가서야 따라 웃었다.
우물가에는 사람이 있었다. 장작을 나르던 아이가 세 사람을 보고 땅에 짐을 내려놓았다. 아우가 떠날 때 어머니의 뒤에 숨어 있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어깨 높이까지 컸다. 아이는 먼저 석두의 빈 소매를 보고, 곧 눈을 돌렸다. “사람들 부를게요.” 석두는 “물을 한 바가지 먼저 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두레박을 내리다 말고 물부터 떴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창문을 열고, 누군가는 밭에서 손을 씻을 때까지 기다렸다. 열일곱 명이 떠났던 날을 기억하는 집들은 문밖으로 나오는 데 더 오래 걸렸다. 돌아온 셋을 보고 안도의 숨을 쉬던 사람이 곧 셋 뒤의 빈 길을 바라봤다. 소호의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등을 몇 번 쳤다가, 바로 옆집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가서 씻어라. 밥을 해 놓으마.”
우물가의 촌장은 사람을 만나면 예전처럼 “열일곱이 나갔지”라고 말했다. 그 뒤에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첫해에는 전사 통지가 오면 온 마을이 울었고, 다음 해에는 아이들이 울음소리만 듣고도 어느 집인지 알아맞혔다. 이제는 소식이 와도 곧장 울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음 날 남의 밭에 물을 대고 밥을 지어야 해서였다. 익숙해진 것은 사람을 잃는 일이 아니라 울음을 멈춰야 하는 순서였다. 그 순서가 몸에 붙을수록 사람들의 마음에는 보내지 못한 말이 더 쌓였다.
대산의 아내는 길에 서 있는 셋을 보았다. 소호가 전쟁 전에 대산에게 나무 낫자루를 빌려 간 일이 떠올랐고, 그것을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남편의 목소리보다 그런 쓸데없는 셈이 먼저 나서 화가 났다. 아우가 살아온 것은 다행이었다. 동시에 왜 그가 돌아오고 대산은 오지 못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 질문을 아우에게 던져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알면서도 원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우의 어머니는 자기 집 앞이 아니라 우물 건너에서 나왔다. 이웃의 소쿠리를 들어 주던 참이었다. 아우는 그가 어머니를 보는 사이에 어머니도 자기 얼굴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의 눈이 한동안 머뭇거렸다. 키가 컸고, 광대뼈가 도드라졌고, 한쪽 어깨를 조금 먼저 돌려 사람 사이를 지나는 버릇이 생긴 아들이었다. 그래도 손에 들고 있는 낡은 보따리의 매듭은 떠날 때와 같은 방식이었다.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해 동안 입속으로 수없이 연습한 대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다가와 그의 소매를 잡았다. 바로 뒤에 오대산의 아내가 서 있었다. 아우는 품속에 있는 유품 꾸러미를 떠올렸고, 어머니도 그가 말을 삼킨 이유를 알아챘는지 손을 놓지 않은 채 “먼저 들어가자”라고만 했다.
대산의 아내는 아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산길에 더 오는 사람이 있는지 한 번 보고는 집 쪽으로 돌아섰다. 아우는 그 뒷모습을 붙들고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만수가 맡긴 꾸러미가 갈비뼈를 눌렀다. 그러나 대산이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 그때 자기가 어디 서 있었는지를 길 한복판에서 외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원하지 않을 때 들려주는 마지막 말은 자기 짐을 덜려는 일 같았다.
길 아래 집에서는 돌아오지 않은 아들의 어머니가 세 사람을 한 번 더 불렀다. “우리 애는 정말 못 오는 거니?” 서찰에는 실종이라 적혔고,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셋 중 아무도 아니었다. 아우는 모른다고 말했다. 여인은 “그럼 모른다고 적어 줘”라고 했다. 전사했다는 말도, 돌아온다는 말도 아닌 그 한마디를 받을 사람이 있어야 했다. 옆에서 그녀의 올케가 물동이를 대신 들어 주었다. 두 여자는 아우가 지나갈 때까지 문을 닫지 않았다.
집 안에는 두 사람의 그릇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오래 쓰던 것, 하나는 이가 나가 새로 기운 것이었다. 어머니는 쌀을 씻으려다가 “오늘은 이웃에서 먼저 밥을 보내겠구나” 하고 손을 멈췄다. 문 밖에서는 사람들이 채소 한 줌, 달걀 하나씩을 놓고 갔다. 누구도 오래 머물러 환영의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아직 다른 집에는 기다림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우가 물을 길어 오겠다고 일어서자 어머니는 그의 손을 보았다. 검을 잡은 자리에 굳은살이 두껍고 손등에는 오래된 가는 흉터가 있었다. “잠깐만 앉아.” 그가 앉자 어머니가 문을 닫았다. 그제야 어머니는 아우를 품에 안았다. 소리 내지 않으려 입술을 다문 채 어깨가 몇 번 떨렸다. 아우는 어머니의 등을 감싸다가 손을 멈췄다. 사람을 찌른 손이었다. 어머니는 그 손을 자기 등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늦어서 죄송해요.”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돌아온 날에 그런 말을 왜 하니.”
아우는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전장에서 울지 못한 날이 많아서인지, 어머니 앞이라서인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의 팔은 기억보다 가늘었다. 그는 그 사실이 무서워 한동안 더 꼭 안았다. 저녁이 되자 소호의 집에서 보내 온 국이 식어 있었고, 두 사람은 그것을 다시 데워 나누어 먹었다.
저녁밥을 보내온 집에서는 말린 나물만 자기 밥상에 남겨 두었다. 아우의 어머니는 이를 알고 국을 반으로 덜어 내일 그 집에 가져가자고 했다. “오늘은 네가 먹어. 누군가 돌아온 날이잖니.” 말을 마친 뒤 어머니의 눈가가 또 붉어졌다. 남의 집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우리 집에서는 숟가락 소리를 내도 되는가, 그 마음을 어머니도 아는 듯했다. 그래도 아들의 그릇을 먼저 채웠다. 기쁨까지 숨기면 살아온 아들에게 미안할 것 같았다.
진노야의 집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가 몇 달 전 길을 떠났다고 했다. 누구와 갔는지는 보지 못했고, 우물 줄을 갈 때 쓰던 칼과 오래 앉아 있던 나무 의자만 남았다. “네가 돌아오면 먼저 쉬게 하라고 했어.” 어머니는 말을 조금 늦추었다. “다른 건 묻지 말라고도.” 아우는 노인이 어디로 갔는지 물으려다, 어머니도 모르는 일을 다시 묻지 않았다.
밤에 아우는 문가에 쌓인 짚신을 세었다. 자기 것과 어머니 것, 이웃이 낮에 두고 간 작은 신 한 켤레. 전쟁터에서는 늘 다음 북소리를 기다렸는데 여기서는 우물 두레박 소리와 먼 개 짖는 소리만 들렸다. 그는 잠깐 안심했고, 그 안심 때문에 대산의 아내가 서 있던 길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돌아왔다. 그 말을 마음속으로 해 보았다. 어머니가 자는 방에서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내일은 대산 형의 집에 가야 한다. 그다음 날에도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 밤만큼은 어머니가 살아 있고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 아우는 품의 꾸러미를 머리맡에 내려놓고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