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 10 · 초고

산에 남은 발자국

무당산의 새벽, 낯익은 발걸음과 풍경이 떠난 진노야를 불러온다.

균주에서부터 산의 윤곽이 조금씩 겹쳐 보였다. 낮은 능선 너머로 더 높은 봉우리가 드러나고, 구름은 그 사이를 지나다 숨었다. 무당산에 오를 수 없는 큰 수레는 아래 관고에 두었다. 강이준은 보상 문서와 약재 몇 꾸러미만 산문으로 올렸다. 아우는 아직 낫지 않은 옆구리를 느끼면서도 문서함을 멨다.

새벽의 돌계단은 밤비에 젖어 있었다. 솔잎 끝에서 떨어진 물이 검은 돌에 작은 자국을 남겼다. 아우는 지름길로 올라가던 소호를 따라잡으려다 발을 늦췄다. 급히 딛는 사람의 신발이 미끄러지는 곳을 보고 남은 발을 마른 돌 위에 두었다. 별것 아닌 걸음이었다. 그런데 이 산에서는 그 걸음마저 누군가 오래전에 가르쳐 준 것처럼 느껴졌다.

산문 안 뜰에는 젊은 제자들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그들은 먼저 검을 크게 휘두르지 않았다. 한 사람이 발을 내밀고 멈추면 다음 사람은 그가 비워 둔 자리에 들어섰다. 손에 든 목검은 뒤늦게 따라왔다. 빠르게 움직인 사람보다 제자리로 조용히 돌아온 사람이 앞줄에서 다시 시범을 보였다. 아우는 자신이 밤마다 붙들던 두 번째 발을 저들이 아무렇지 않게 놓는다고 생각했다.

잠깐 뒤 그 생각도 고쳤다. 같은 줄에 선 제자들 가운데 발목이 흔들리는 이가 있었다. 사형이 그를 밀어 다시 세우지 않고, 서 있던 자리를 한 뼘 넓혀 주었다. 그러자 어린 제자가 넘어지지 않았다. 아우는 진노야가 마을의 흙바닥에 발자국 둘을 그려 놓던 모습을 떠올렸다. 노인은 틀렸다는 말을 서두르지 않았다. 아우가 지운 자리를 다시 밟을 때까지 기다렸다.

호송 문서를 받은 무당의 도인은 전사자와 다친 제자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양양에서 따로 보관 중인 물자는 아직 지급된 것으로 기록할 수 없다고 강이준이 먼저 밝혔다. 도인은 그 사실도 적었다. 뜰의 수련은 멈추지 않았다. 아우는 문서가 오가는 탁자보다 멀리, 기둥 밑에서 검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제자를 오래 보았다. 검을 든 자세보다 내려놓은 뒤의 발이 더 단단해 보였다.

산 아래 마을의 진노야는 장작을 패기 전에도 도끼를 서둘러 들지 않았다. 굵은 나무를 발로 굴려 결을 살피고, 어린 아우에게는 가벼운 장작 한 토막을 내밀었다. “힘이 어디로 갈지부터 봐라.” 아우는 단숨에 쪼개 보이려다 빗맞혔다. 진노야는 웃지도 나무라지도 않고 빗맞은 자리를 손으로 짚었다. 아우는 그 손의 마디가 거칠었다는 것까지 기억했다. 무당의 정갈한 뜰에서는 그런 손이 더 선명해졌다.

솔숲 너머 작은 누각에서 내려다보니 골짜기마다 안개가 다른 높이에 머물렀다. 바람이 먼저 아래쪽 가지를 흔들고, 한참 뒤에 위쪽의 잎이 움직였다. 아우가 전장에 있는 동안 진노야는 마을을 떠났다. 돌아온 아우가 본 것은 불 꺼진 집과 남겨진 나무 의자뿐이었다. 어머니는 노인이 아우가 돌아오면 먼저 쉬게 하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그는 떠나는 등을 보지도, 가지 말라고 붙잡지도 못했다. 그 뒤에도 물지게를 멜 때마다 누군가 함께 발을 맞추는 듯했다. 여기까지 와서도 아우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이 산을 지나는 누군가에게 그의 이름을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진노야를 아십니까?”라고 입을 열자니 마을에서 장작을 패 주던 노인을 문파의 어떤 높은 이름으로 바꾸게 될 것 같았다. 아우는 아직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가 가르친 것을 자신의 무공이라고 자랑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이 산을 그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이루기 어려운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노인은 이미 이 바람의 결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수련이 끝날 즈음 한 제자가 홀로 남아 다시 첫발을 놓았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는 여러 번 같은 곳에서 멈췄다. 아우도 돌계단 아래에서 함께 한 번 발을 옮겼다. 손에는 검이 없었다. 발바닥이 젖은 돌을 누르고, 뒤의 발은 급하게 따라가지 않았다. 화산과 낙양에서 잠깐 버티게 해 준 동작이 이곳에서는 사람을 이기기 위한 기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소호가 내려갈 때가 되었다고 불렀다. 아우는 누각 아래의 물자국을 한 번 더 보았다. 빗방울은 마르고 자국은 사라질 것이었다. 그러나 누가 곁에 서서 기다려 주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진노야에게 길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보았다. 화산에서 다쳤고, 낙양에서 겁이 났고, 양양에서는 또 전쟁이 올까 두려웠다고. 답은 들리지 않았다. 아우는 답이 없어도 그 말을 끝까지 했다.

산을 내려올 때 아래 골짜기에서 바람이 올라왔다. 양양의 바람에는 군량과 북소리가 섞여 있었다. 여기서는 솔 냄새와 젖은 돌 냄새가 먼저 났다. 같은 바람이 다른 것을 싣고 오는 것이었다. 아우는 제 검집을 바로 매고 소호의 뒤를 따랐다. 다음 고을에도 아직 받지 못한 이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