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 11 · 초고

빼앗긴 고을

청성으로 향하는 길, 보상 물자를 빼앗긴 고을에서 검과 이름이 서로 다른 일을 한다.

한중에서는 부상병의 약을, 광원에서는 전사자 집의 곡식을 내렸다. 검주의 작은 고을에서도 명부와 실물을 맞췄다. 세 고을을 지나며 호송대의 수레는 가벼워졌다. 검주 남쪽의 고을에서 마지막 자루를 내려놓은 날 밤, 산채의 사람들이 보상을 받은 집만 골라 문을 부쉈다. 칼에 맞은 문지기가 새벽에야 역참까지 기어왔다.

아우가 돌아왔을 때 한 여인이 빈 항아리 곁에 앉아 있었다. 전날 그가 건넨 곡식의 수령증은 마당에 떨어져 있었다. “우리 이름을 저들도 알고 왔소.” 그녀의 아들은 도적의 손에서 빠져나오며 발목을 다쳤다. 관아의 창고도 털렸고, 마을의 밭에는 피가 말라붙었다. 소호가 같은 몫을 다시 내려 주자고 했지만 강이준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었다.

소식을 듣고 청성의 허영과 양설, 곤륜의 경무, 사천세가의 당소련과 형산세가의 젊은 무인이 모였다. 청성과 곤륜은 산길을, 두 세가는 아래 골짜기를 맡았다. 형산의 자제는 “채주를 잡는 이름은 내 것으로 남겨 두시오” 하고 먼저 올랐다. 허영은 대꾸하지 않고 고을 문지기의 상처를 살폈다. “도적이 낫을 든 농부라면 이런 칼자국은 못 남깁니다.”

골짜기 위에서 곡식 자루가 굴러 떨어졌다. 나무 사이로 도를 든 사내가 나타났다. 산채의 우두머리 노칠이었다. 그 뒤의 여인 사련은 양손에 짧은 갈고리를 쥐었다. 허영이 외쳤다. “보상받은 집의 이름을 어디서 들었나?” 노칠은 도를 비껴 들었다. “네놈들 격문보다 먼저 마을에 소문이 돌았지. 도장 찍은 집에 쌀이 들어왔다는 소문.” “그걸 빼앗아 아이까지 베었나?” 노칠이 답하지 않고 먼저 뛰어내렸다.

허영의 현죽연검이 노칠의 도를 세 번 받았다. 첫 검은 손목을 찌르고, 둘째는 도의 등으로 미끄러져 아래를 열었다. 노칠은 그 빈곳에 발을 놓지 않았다. 짧은 반월도를 거꾸로 당겨 허영의 팔 안쪽을 베었다. 허영이 비켜 선 자리에 경무의 설봉검로가 수평으로 들어왔다. 노칠은 도를 낮춰 검날을 위로 튕긴 뒤 바위에 발을 걸어 두 사람의 사이를 갈랐다. 검과 도가 네 번 부딪혔을 때 경무의 소매 끝이 찢어지고 노칠의 볼에도 얕은 피가 났다.

아래에서는 당소련이 손끝으로 사련의 갈고리 하나를 밀어냈다. 형산 자제가 평산권으로 옆구리를 노렸다. 사련은 피하는 대신 다른 갈고리로 그의 팔을 걸어 힘줄을 당겼다. “이름이 먼저 달려오니 주먹이 늦네.” 그녀가 비웃자 형산 자제는 이를 악물고 더 깊이 들어갔다. 당소련이 그의 등을 잡아 빼지 않았다면 목이 비었을 것이다. “지금 자랑할 때입니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사련은 이미 수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우와 소호는 아래 길에서 마을 사람들을 빼내고 있었다. 한 아이가 숨으려던 수레 뒤로 뛰어들자 사련의 갈고리가 바퀴살을 타고 돌아왔다. 아우가 검을 뽑았다. 삼재검법의 첫 베기로 갈고리의 안쪽을 막았지만, 쇠끝 하나가 소매를 찢었다. 둘째 베기를 이으려던 손이 굳었다. 사련의 다른 손에는 아직 갈고리가 남아 있었다.

“그 검으로 사람을 지키겠다고?” 사련이 물었다. 아우는 답할 틈이 없었다. 그녀가 검등을 걸어 당기자 몸이 수레 쪽으로 쏠렸다. 그는 배워 온 대로 둘째 발을 따라 붙이려 했다. 그러면 갈고리가 돌아올 자리에 자기 목이 있었다. 아우는 남은 발을 뒤가 아닌 옆으로 놓았다. 검을 빼려 들지 않고 손목을 돌려 쇠끝이 돌아갈 폭을 한 뼘 줄였다. 아이가 그 틈으로 소호에게 달렸다.

사련은 갈고리를 놓지 않았다. 아우의 검과 쇠가 걸린 채 둘은 짧은 찌르기를 주고받았다. 아우의 셋째 초식이 그녀의 어깨를 향했으나 칼끝은 허공을 찔렀다. 사련의 발은 이미 그의 두 번째 발이 놓일 자리를 피해 있었다. 아우는 그제야 자신이 한 동작을 끝낼 때마다 다음 발을 같은 곳에 두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눈으로만 상대의 손을 쫓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그는 검을 거두며 발 하나를 비워 두었다. 그 자리에 당소련이 들어와 사련의 손목을 쳤다.

노칠은 위에서 허영과 경무를 번갈아 밀었다. “당신들이 되찾은 곡식, 산 위에도 사람이 먹는다.” 허영은 상처 난 팔을 접고 검길을 좁혔다. “산 위에 굶는 자가 있어도 여기 아이의 밥을 빼앗을 권리는 없소.” 경무가 바위 뒤를 돌아 도의 옆면을 쳤다. 노칠은 검 둘을 한꺼번에 막지 못해 자루 하나를 버렸다. 대신 허영의 허벅지를 스치고 경무의 어깨를 밀어 길을 열었다. 형산 자제가 뛰어들어 막으려 했으나 사련이 갈고리로 그의 허리띠를 낚아챘다. 두 도적은 빼앗은 자루 둘을 메고 숲으로 사라졌다.

전투는 승리의 환호로 끝나지 않았다. 도적 셋이 붙잡혔고 한 명은 일어나지 못했다. 허영의 팔과 경무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아우는 찢어진 소매 아래 손목이 떨리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방금 검을 맞댄 것은 전장의 혼란 속에서 창을 휘두르던 일과 달랐다. 상대는 아우의 다음 발을 기다렸고, 잘못 놓은 발 하나가 사람의 목으로 이어졌다.

형산 자제는 붙잡힌 도적들을 가리키며 “우리가 고을을 구했다. 누가 채주를 놓쳤다는 말은 빼시오”라고 했다. 당소련은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아이의 발목을 살폈다. 허영은 도적의 이름과 빼앗은 자루의 수를 따로 적게 했다. 포로 하나가 “산 위의 집에 먹일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마른 밤 몇 알이 그의 품에서 나왔다. 그가 빈곤했다는 사실도, 고을 사람을 찌른 사실도 그대로 남았다.

마을 사람들은 포로를 당장 처단하라 했다. 문지기는 아직 누워 있었고, 두 자루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우는 그 말을 막을 힘도, 모두를 용서하라 할 권리도 없었다. 그는 관아가 포로를 맡도록 하는 결정에 따랐다. 대신 석두와 수령증을 대조해 어느 집의 곡식이 돌아왔고 어느 집은 여전히 빈손인지 적었다. 강이준은 무인들의 전공 장계와 별도로 그 목록을 봉했다. 양설은 문지기에게 약을 썼고, 아우는 아이가 다시 걸을 때까지 물 한 그릇을 가져다주었다.

아우는 싸움에서 자신이 새 검법을 얻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사련과 몇 합 더 맞섰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상대의 칼이 돌아올 자리와 자신의 다음 발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알았다. 아이가 빠져나갈 틈을 만든 발은 당소련이 들어올 자리도 만들었다. 진노야가 남긴 말은 그제야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틈은 피하려고만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

청성으로 향하며 아우는 격문에 적힌 영웅의 이름과 곡식을 돌려받지 못한 집의 이름을 떠올렸다. 약탈을 멈추게 한 고수의 힘은 분명 필요했다. 그 힘을 제 이름만 새기는 데 쓰려는 사람도 있었다. 굶주림을 말한 도적은 남의 허기를 만들었다. 아우는 어느 편의 말 하나로 끝내지 못했다. 다친 아이를 빼내고, 포로를 관아에 넘기고, 빈 장부 칸을 남기지 않은 일이 그날 자신이 따를 수 있었던 현실이었다. 정의는 힘센 이가 선포하는 말이 아니라, 그런 선택들이 모여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