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 3 · 초고

두 번째 발

먼 곳의 군사가 움직이는 동안 마을에는 봄이 돌아오고, 아우는 같은 동작을 다시 배운다.

귀향하고 두 번째 봄이 왔을 때 아우는 지붕을 고쳤다. 대산의 집은 기와가 아니라 볏짚을 새로 얹어야 했다. 아우가 서툴게 묶은 곳을 대산의 아내가 아래서 가리켰다. “그렇게 하면 첫 비에 샌다.” 아우가 다시 묶자 이번에는 “거긴 좀 낫네” 했다. 집을 떠나기 전 여인은 보리죽 한 그릇을 내놓았다. 아우는 먹고 가라는 말에 밥상 앞에 앉았다. 그들이 대산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은 날이었다.

마을에는 몇 해 동안 새 징집장이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서당의 낡은 담 뒤로 숨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어른들은 모내는 순서를 두고 싸웠다가 저녁이면 서로 소를 빌렸다. 대산의 아내는 망치를 아우에게 맡길 때마다 그것을 어디에 두었는지 두 번 물었다. 마칠의 어머니는 방아가 막히면 아우를 불렀다. 사람들은 그를 용서해서가 아니라 손이 필요해서 불렀다. 그는 그 차이를 알고도 갔다.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도 북쪽 소식은 장사꾼을 따라 늦게 왔다. 원의 왕실을 거느린 군대가 큰 호수 근처에서 패했다느니, 북방의 여러 부족이 항복했다가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느니 했다. 아우가 “또 군대가 내려옵니까?”라고 묻자 늙은 촌장은 소식이 소식일 뿐이라며 웃었다. 그해 그들에게 닥친 일은 북방의 기병이 아니라 여름 장맛비였다. 젖은 땔감을 말리고 무너진 논둑을 함께 쌓느라 하루가 갔다.

아우는 새벽마다 나무 검으로 삼재검법의 내려베기, 가로베기, 찌르기를 했다. 볕이 강해지면 창대로 바꾸어 같은 선을 수백 번 밀었다. 처음에는 전장에 비해 너무 느리고 좁아 보였다. 그러나 발이 흐트러진 날에는 세 번째 찌르기에서 언제나 어깨가 먼저 나갔다. 강만수가 그랬다. “어깨가 앞서면 네 목이 빈다.” 아우는 속으로 반박했다. 지금은 적도 없는데. 그러고는 빈 목이 보이는 게 싫어서 다시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아침밥 전에 논둑에서 검을 휘두르는 걸 보고 “검이 벼를 베어 주면 좋겠다” 하고 말했다. 아우가 낫을 집어 들며 “이쪽이 훨씬 빠릅니다”라고 하자 어머니는 웃었다. 웃다가 짧게 기침을 했다. 아우가 약초를 달이겠다고 하면 어머니는 “먼저 물지게부터 내려놓아라. 약초로 물을 긷진 못한다”고 했다. 몇 계절이 지나자 어머니는 긴 비탈을 쉬지 않고 오르지 못했다. 아우는 물을 대신 길었지만 쉬어 가는 횟수까지 세지는 않았다. 세기 시작하면 무언가를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스물셋 되던 해에 그는 장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린아이 하나가 비탈 아래로 구르는 것을 보았다. 아이를 잡으려던 어머니가 발을 헛디뎠고, 아우는 손에 든 짐을 버리고 달렸다. 처음에는 전장에서 배운 대로 뒷발을 끌어당겼다. 자갈이 미끄러졌다. 다음 순간 그는 진노야의 나무쪽에 적힌 말이 떠올라 남은 발을 아이의 앞이 아니라 옆으로 옮겼다. 아이의 몸이 빈자리로 구르지 않게 막고, 자신은 비탈 아래로 한 뼘 더 내려가 겨우 버텼다.

두 사람은 흙투성이가 되어 울고 웃었다. 아우는 별말 없이 짐을 주웠다. 그러나 걸어오는 동안 이상하게도 그 한 뼘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 몸이 먼저 가려던 곳을 비워 두자, 아이가 달려올 길이 달라졌다. 강가에서 맞붙던 고수들은 상대의 다음 발이 놓일 자리를 먼저 보았던가. 기억은 여전히 흐렸지만 그날의 자갈과 무게는 발바닥에 남았다.

나는 대단한 걸 알아낸 게 아니다. 아이 하나 받으려다 넘어질 뻔했다. 그런데 나무 검을 쥐면 자꾸 그때의 두 번째 발을 찾게 됐다. 첫발 다음에 따라가는 발이 아니라, 먼저 내가 서 있을 자리를 고르는 발.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줄 알았다. 막상 창을 들고 하면 앞발이 멈췄다. 오른쪽으로 옮기면 칼끝이 뜨고, 칼끝을 내리면 중심이 뒤로 빠졌다. 전장이라면 세 번은 죽었을 동작이었다.

아우는 사흘을 헤매다가 나무쪽을 다시 꺼냈다. ‘남은 발을 첫발 뒤로 끌고 오지 마라.’ 그는 글자 밑에 작은 흙자국을 묻혔다. 그 뒤로는 삼재검법의 세 가지 기본 초식 가운데 가로베기를 할 때만 두 번째 발을 시험했다. 하루에 한두 번 몸이 가벼워졌고, 나머지 때에는 발등만 아팠다. 창술에는 더더욱 맞지 않았다. 석두가 “맨날 똑같이 하는데 왜 오늘은 혼자 화를 내냐”고 묻자 그는 “똑같이 못 해서”라고 했다. 석두는 창대를 아우에게 돌려주며 “그럼 밥 먹고 또 해”라고 했다.

스물다섯이 된 1391년의 가을, 아우는 여전히 우물 줄을 갈고 남의 지붕을 고쳤다. 어머니는 볕 좋은 곳에서는 멀쩡해 보이다가 저녁이면 손끝에 힘이 풀렸다. 아우는 누가 더 어려운 살림을 사는지 알면서도 자신들의 겨울이 먼저 걱정됐다. 오늘 연습을 쉬면 내일 도로 서툴러질까 두려웠다. 그 생각을 하다가, 어머니가 장작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뒤늦게 보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검을 내려놓고 장작을 받았다.

“네가 아주 조금 웃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뭘 알아낸 얼굴이기도 하고.” 아우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게 하나 더 생겼어요.” 어머니는 “그럼 내일도 알아보면 되겠네” 하고 밥상 위에 무를 올렸다. 아우는 내일도 이 집에서 밥을 먹겠다는 평범한 약속처럼 그 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