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 4 · 초고

이름이 지워진 자리

1392년. 도성의 상실은 궁궐의 문을 넘고, 한참 뒤 작은 마을에까지 닿는다.

1392년 봄, 황태자 주표가 병상에 들었다는 소식은 역참마다 조금씩 다른 말로 전해졌다. 동궁에서 처리하던 장부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전사자 유족의 곡식과 다친 병사의 치료비를 다시 따지던 장부였다. 관아의 서리는 부음을 듣기 전까지 그 장부를 보류함 위에 놓아두었다.

사월, 도성에서 조종이 울고 역로를 따라 부고가 내려왔다. 주표가 죽었다. 어느 고을의 아전은 황태자의 시호를 잘못 베껴 다시 썼고, 다른 고을의 노인은 황제보다 아들이 먼저 죽었느냐고 여러 번 물었다. 도성의 궁문은 평소처럼 열리고 닫혔으나, 그 문을 나온 명령서에는 전과 다른 서명이 붙기 시작했다. 황제가 아들의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마을에 없었다.

그해 가을 주윤문을 황태손으로 세운다는 조서가 고을에 도착했다. 관아의 관리들은 조서를 받은 날부터 올릴 문서의 호칭을 고쳤다. 변경에서는 북방을 살피라는 명령이 계속 내려왔고, 주둔병과 말먹이를 세는 장부가 늘었다. 포어르해에서 원의 군대를 크게 깨뜨린 지 몇 해가 지났어도, 남은 세력과 북방 부족의 움직임을 놓칠 수 없었다. 큰 전투가 없다는 말은 국경을 지키는 군사까지 쉬고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관아의 한 서리가 밤늦게 보상 장부의 먼지를 털었다. 몇 해 전 아우의 선봉대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있었다. 지급 완료라는 먹 옆에 ‘실물 미도착’이라고 다시 적힌 줄이 길었다. 신하들이 올린 청원과 앞서 동궁에서 재검토하던 장부가 함께 묶여 돌아온 뒤, 조정은 유족과 부상병에게 보낼 곡식, 천, 약재를 다시 나누어 운반하도록 했다. 문서 맨 위에는 황제의 재가를 알리는 관인이 찍혀 있었다. 그 명령의 무게는 서리에게 곧 수레의 수와 길의 숙소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우의 마을에서는 그동안 징집도 전투도 없었다. 물길을 놓고 다툰 사람들은 같은 삽으로 둑을 다시 팠다. 마칠의 어머니는 아우에게 방앗간의 부러진 손잡이를 내밀었다. “해 지기 전에만 해 줘.” 한때 아우의 얼굴을 피하던 사람이었다. 아우는 손잡이를 깎아 끼우고, 집에 들러 어머니와 보리밥을 먹었다. 저녁마다 어머니는 목이 잠겼고, 숨을 길게 쉬어야 다음 말을 이었다. 아우는 의원을 부르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겨울 땔감이 더 급하다며 그의 잔에 물을 따랐다.

그날도 아우는 돌터에서 삼재검법을 했다. 첫 번째 가로베기는 너무 컸다. 두 번째에는 진노야가 남긴 말을 떠올리고 뒷발을 비껴 놓았다. 검끝이 어깨를 따라 가볍게 돌아온 듯했다. 아우는 숨을 멈췄다. 방금 무엇이 달랐지? 다시 하면 발이 빨랐고 손목이 흔들렸다. 세 번째에는 원래의 답답한 동작으로 돌아갔다. 자갈길에서 아이를 붙잡았을 때의 무게가 순간 떠올랐지만, 그 감각을 검에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제대로 했다고 누구에게 보여 줄 수도 없다. 방금 한 번 된 것 같은데 그것마저 착각이면 어쩌지. 그는 전쟁에서 보았던 고수의 발을 떠올리고 그들처럼 서 보았다가 곧 그만두었다. 그들에게는 숨 쉬는 듯 쉬운 일이 자신에게는 어쩌다 한 번이었다. 아우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시 기본 삼재검법의 첫 초식부터 시작했다. 조금 전의 한 번이 가짜라 해도, 내일 같은 발을 다시 놓아 볼 수는 있었다.

며칠 뒤 관아에서 사람이 왔다. 관리가 촌장 앞에 놓은 문서에는 아우와 소호, 그리고 옛 선봉대에서 살아 돌아온 몇 명의 이름이 있었다. 전사자와 부상자의 보상 물자를 각 고을로 나눠 보내는 호송 인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무장 상단의 표사처럼 길의 앞뒤를 맡되 관아의 수레를 지키고 수령증을 받아 돌아오라는 임무였다. 강만수가 확인해 둔 옛 선봉대 생존자 명부에서 길과 수레를 아는 사람을 골라 다시 차출한 것이었다.

촌장은 먼저 곡식의 양을 물었다. “지난번에도 종이에는 줬다고 되어 있었소.” 관리가 말했다. “이번에는 수령하는 자리에서 표사를 세우고 확인하라는 명입니다.” 소호는 빈 들것을 등에 지고 나타나 문서를 읽었다. “그러면 우리가 지키다 다치면 누가 적어 줍니까?” 관리는 한참 뒤에야 호송 중 부상자 몫의 급료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액수만 있을 뿐 누구의 이름도 없었다.

아우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문서를 보여 주었다. 어머니는 혼자 남겨진다는 말을 먼저 하지 않았다. “마칠이네 이름도 그 명단에 있니?” 아우는 명단을 찾아보았다. 있었다. 대산의 아내에게 갈 천도 있었다. 아우는 그것들이 반드시 도착하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이 수레 옆에 있다면, 적어도 받지 못한 것을 받았다고 쓰는 순간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문서를 접어 주었다. “그럼 길에서 먼저 네 밥을 챙겨. 빈속이면 남의 몫도 못 지켜.”

아우는 밤에 소호와 함께 창고의 수레바퀴를 살폈다. 석두는 한 손으로 호송 명부를 베끼겠다고 했다. 수레가 앞으로 어디까지 가는지 물으니 먼저 남쪽의 창고를 거쳐 중원의 여러 고을로 흩어진다고 했다. 어느 고을에서 누구의 이름을 찾게 될지는 아직 몰랐다. 멀리서 북방의 군량 수레가 다른 길로 나뉘어 갔다. 후계를 정한 조정도 변경을 경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출발 날 아침, 아우는 검을 집 안에 세워 두고 창을 들었다. 어머니는 문턱에서 기다렸다. 돌아온 뒤 평온했던 해들이 짧게 느껴졌지만,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하루하루를 헛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다녀오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어머니는 평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아우가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뒤를 따르던 발을 서둘러 끌어오지 않았다. 앞에는 곡식과 약재를 실은 느린 수레들이 있었다. 중원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