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의 창고 앞에 옛 선봉대가 다시 모였다. 소호는 얼굴의 젖살이 빠지고 목덜미에 햇볕이 깊게 앉았다. 석두는 오른손으로 명부를 넘기다 왼손으로 종이를 눌렀다. 전장에서 다친 팔은 끝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곽삼복은 지팡이를 짚고 걸어왔지만 호송대 뒤편에서 수레바퀴를 살피는 일만큼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았다. 빈자리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의 늙은 모습을 본 뒤에야 그들이 살아남은 세월이 보였다.
아우는 스물여섯이었다. 검집은 오래 써서 모서리가 닳았고, 바람에 그을린 얼굴은 열다섯 살의 그를 알아보기 어렵게 했다. 어머니가 새로 꿰매 준 옷깃을 손으로 한 번 눌렀다. 소호가 “이번엔 얼마나 가나?” 묻자 아우는 수레에 쌓인 곡식과 천, 약재를 보고 말했다. “받을 사람에게 닿을 때까지.”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
호송대장 강이준은 지도를 수레 위에 펴고 길을 짚었다. 장안 동쪽의 집결지에서 화음현과 화산으로 가고, 동관을 지나 영보·낙양으로 향한다. 등봉현의 소림에 보상 문서를 전한 뒤 남양과 양양을 거쳐 균주, 다시 한중과 촉의 길로 이어진다. 곳곳의 관고에는 수령 명부와 실물을 맞춰 건네고, 문파 몫의 큰 지급 문서는 정해진 창고에서 확인하게 한다. “길이 길다고 수령인의 이름을 줄여 쓰지 마라.” 강이준이 지도 끝을 접었다. “봉인이 깨지면 그 자리에서 적고, 물건을 못 받았으면 받았다는 도장을 받지 마라.”
여섯 대의 수레가 출발했다. 앞쪽에는 곡식, 가운데에는 천과 솜, 뒤쪽에는 약재와 문서함을 실었다. 아우와 소호는 양옆을 맡고 석두는 수령증을 지켰다. 강이준은 좁은 길마다 선두를 멈춰 수레 간격을 다시 잡았다. 멀리 북으로 갈라지는 길에서는 군량 행렬이 지나갔다. 누가 아직 국경 너머에서 군사를 모으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그쪽 수레에는 말먹이와 화살이 계속 실렸다.
화음으로 가는 동안 몇 작은 마을에 보상 물자를 내려놓았다. 촌장은 명부를 읽고 곡식과 약재를 셌다. 유족들은 말없이 줄을 옮겨 섰다. 관리가 황제의 명을 읽자 사람들은 고개를 숙여 은혜에 감사한다고 답했다. 어떤 여인은 곡식 자루를 두 팔로 안고 끝내 남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아우는 수령한 양을 확인하고 다음 수레로 갔다. 그 말 없는 자리에서 무엇이 모자란지 그가 대신 정할 수는 없었다.
화산 아래에서는 보상 문서와 황제의 명을 받으러 나온 사람들이 산길 양쪽에 섰다. 강이준이 관인이 찍힌 명령을 읽고 곡식, 천, 약재와 문파 몫의 지급 문서를 내놓았다. 문주 위청악은 두 손으로 문서를 받았다. 뒷줄에는 전장에서 어깨와 다리를 다친 제자들이 서 있었다. 한 제자가 액수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 약속받은 땅은 아직 다 넘어오지 않았고, 문서에 적힌 큰돈은 지금 산문에 쌓인 곡식이 아니었다.
장로 유청림의 왼팔은 옷 속에서도 낮게 처져 있었다. 그는 수령 명부를 넘겨 전사한 제자의 가족 이름부터 찾았다. 백소진의 이름 옆에는 지급처가 문파로 묶여 있었다. 유청림이 물었다. “그 아이 집은 어디서 받소?” 석두가 장부의 다음 장을 펼쳤으나 별도 배분액이 없었다. 강이준은 문서에 없는 곡식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제자들을 끌고 나왔던 유청림은 문서를 반으로 접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뒤에서 전유가 앞으로 나왔다. 백소진이 죽은 날 검집 끈을 주워 왔던 제자였다. “산문 이름으로 적힌 것을 나누라 하면, 또 누가 정합니까? 살아 돌아온 자들은 치료비도 제 돈으로 냈습니다.” 강이준은 누락을 보고하겠다고 했으나, 전유는 이미 여러 해 전에도 같은 말을 들었다. 다른 장로 나운백은 황제의 명 앞에서 목소리를 낮추라고 제자들을 제지하다가 호송대 쪽을 보았다. “우리가 앞에서 길을 열 때 뒤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이제 장부만 읽어 주는가.”
소호가 한 걸음 앞으로 섰다. 아우가 그의 팔을 가볍게 눌렀다. “우리는 그날 뒤에 있었습니다.” 아우가 말했다. “하지만 수레를 놓고 달아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 없는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전유가 쓰게 웃었다. “그래서 살아 돌아와 상을 나누러 왔소?” 아우는 전장에서 자신의 무예가 약해 고수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던 날을 알았다. 그 부끄러움은 동료들의 몫까지 깎아 내릴 이유가 되지 않았다. “내 검이 약했던 건 맞습니다. 그 말로 죽은 사람의 수레를 지킨 이들까지 욕하진 마십시오.”
전유가 검을 뽑았다. 강이준의 군졸들이 창을 들자 유청림이 오른손을 들어 막았다. 산문 앞의 돌마당에서 아우와 전유가 검을 맞댔다. 첫 합에 전유의 매화검이 아우의 손목 바깥을 찔렀다. 아우는 삼재검법의 가로베기로 검등을 밀고 옆으로 비켰다. 둘째 합에는 베는 대신 짧게 거두어 전유의 어깨가 돌아갈 자리를 막았다. 전유는 연달아 세 방향을 바꾸었으나 아우의 검은 번쩍이지 않고 그때마다 몸 앞에 돌아와 있었다.
아우도 자신이 버티고 있는 까닭을 한순간에 설명할 수 없었다. 돌터에서 수없이 베고 거둔 동작이었다. 진노야가 일러 준 두 번째 발을 먼저 당기지 않고, 뒤에 남겨 둔 자리로 무게를 돌렸다. 전유의 빠른 칼끝이 빈자리를 찌르는 동안 그의 발은 반 걸음 옆에 있었다. 아우가 그 틈에 검끝을 전유의 소매 가까이 멈추자 산문 앞에서 짧은 숨소리가 났다. 전유는 뒤로 물러서며 손목을 낮췄다. 이긴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아우의 검을 웃지 않았다.
나운백이 돌마당으로 내려왔다. 제자를 한 번 돌아본 뒤 아우에게 말했다. “그 발로 다음 검도 받을 수 있겠소?” 아우는 검을 내리지 않았다. 장로의 첫 검은 높이서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 앞을 비스듬히 지나며 아우의 검을 바깥으로 부르고, 다음 변화는 발이 옮겨질 자리에 먼저 와 있었다. 아우는 두 번째 발을 남겨 몸을 틀었다. 진노야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칼끝이 갈비뼈 사이로 깊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래도 나운백의 검등이 옆구리를 세게 쳤다.
아우는 숨이 막힌 채 삼재검법의 마지막 찌르기를 냈다. 검끝이 곧게 뻗었으나 거기서 갈라지는 변화가 없었다. 나운백은 손목만 돌려 그 한 길을 비우고, 손바닥을 아우의 어깨에 댔다. 안쪽에서 밀려온 힘에 아우의 다리가 풀렸다. 그는 돌바닥에 한쪽 무릎을 찧었다. 겉으로는 얕은 상처였지만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옆구리가 찢어지듯 아팠다. 반복한 기본 검과 발 하나로 제자의 빠른 검은 견뎠다. 장로의 변화와 내공 앞에서는 그다음 길을 만들지 못했다.
유청림이 두 사람 사이에 들어섰다. “여기서 더하면 백소진의 집에 갈 곡식이 늘어납니까?” 나운백은 검을 거두었다. 강이준도 창을 내리게 했다. 위청악은 문파 수령란에 도장을 찍되 전사자 가족의 배분이 빠진 줄에는 따로 이의를 적었다. 석두는 같은 문구를 호송 장부에 옮겼다. 받을 수 없는 몫을 받았다고 쓰지는 않았다. 백소진의 집이 언제 실제로 받을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소호가 아우의 겨드랑이를 받치려 하자 아우는 잠깐 기대었다가 스스로 섰다. 유청림은 남은 오른손으로 약재 한 꾸러미를 내밀었다. “우리 몫에서 쓰시오.” 아우는 사양하지 않았다. 전유는 검집 끈을 다시 조이며 길을 비켜 섰다. 서로 사과할 말은 찾지 못했다. 전쟁에서 잃은 것이 다른데 누가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수레가 화산을 떠날 때 강이준은 다음 행선지 동관을 불렀다. 아우는 흔들리는 수레 옆에서 숨을 짧게 나눠 쉬었다. 멀리 보이는 산문은 생각보다 작았고, 그 안에 쌓인 원망은 멀리서 보이지 않았다. 그의 검은 처음으로 화산의 제자를 멈추게 했지만, 오늘 자신이 배운 것은 승리의 맛이 아니었다. 다음 고을에는 또 이름이 적힌 명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친 옆구리를 누른 채 수레의 속도에 발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