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에서 등봉현으로 가는 길에 아우는 제갈준의 검을 몇 번이나 되짚었다. 검끝이 맞닿은 잠깐 동안은 버텼으나, 문지기와 다른 세가 자제들까지 움직였다면 수레를 지킬 수 없었다. 더 괴로운 것은 그 집안의 큰 지급액을 끝내 멈추지 못했다는 생각이었다. 소호는 그에게 쉬라고만 했다. 서로의 화를 다른 말로 덮지 않았다.
소림의 문 앞에서는 수레를 세고 명부를 받았다. 전쟁에서 다친 승려 하나가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나왔다. 젊은 승려들은 지급액을 듣기 전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법명을 읽었다. 호송대의 장부에는 두 법명이 없었다. 산문을 떠나 전장에서 숨진 승려들이었다. 그들에게 돌아갈 곡식을 속가의 가족 몫으로 셀 일은 없었다. 그러나 사찰의 치료와 전사 승려를 기리는 공동 몫에서도 그 두 이름은 빠져 있었다.
강이준은 누락을 상부에 올리겠다고 했다. 낙양에서 들었던 말이 이곳에서도 반복되자 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승려들은 빈 수령란에 도장을 찍지 않고 두 법명을 청원서에 올렸다. 그런 뒤 이미 받은 사찰 몫에서 곡식을 덜어 부상 승려들의 약과 밥을 마련하고, 산 아래에 굶는 이가 있으면 공양을 나누었다. 나라가 아직 주지 않은 몫을 받았다고 적지는 않았다. 소림의 창고가 먼저 가벼워졌지만, 남은 사람의 허기를 기록이 고쳐질 때까지 미뤄 둘 수는 없었다.
아우가 물었다. “그렇게 나누면 관아에서는 이미 받은 것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 노승은 도장을 찍지 않은 칸을 펴 보였다. “받지 못한 것은 받지 못했다고 씁니다. 지금 이 손에 있는 곡식을 나누는 일과는 별개지요.” 그는 아우의 화난 얼굴을 보았다. “《법구경》에 원한은 원한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빼앗긴 사람의 이름까지 지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잠시 바람이 불어 아직 먹이 마르지 않은 두 법명 위로 종이 끝이 들렸다. 노승이 손바닥으로 눌렀다. “성냄을 놓는다고 눈을 감으면, 눈앞에서 누가 굶는지도 모르지요. 마음에 칼을 쥐지 않고도 사실은 사실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한 사람의 허기를 덜고, 내일에도 이 두 이름이 남게 하십시오.” 법당에서 저녁 종이 울렸다. 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호통을 들은 것도 아닌데 어깨에 들어간 힘이 천천히 풀렸다.
소호는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곡식 자루를 함께 옮겼다. 아우는 노승의 얼굴에 성난 기색이 없다는 이유로 그가 덜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깨달았다. 다친 승려가 자루를 받으려다 팔에 힘이 풀렸다. 노승이 바로 그 자리를 받쳐 들었다. 그 작은 동작이 낙양 마당에서 자신이 내밀었던 검보다 오래 눈에 남았다.
저녁 공양 뒤에도 승려들은 황제의 명을 탓하거나 칭송하는 말로 식사를 채우지 않았다. 빠진 두 법명의 전장 기록과 아직 치료를 받는 승려들의 이름을 맞췄다. 아우는 석두와 함께 청원서에 그 내용을 옮겼다. 한 승려가 아우의 붓을 바로 쥐어 주었으나 대신 써 주지는 않았다. 획 하나가 느려지자 그의 마음도 조금 가라앉았다.
아우는 진노야가 지웠던 뒤쪽 발자국을 생각했다. 화산에서는 그 발이 자신을 살렸다. 낙양에서는 발을 남겼어도 마음이 이미 상대의 화려한 옷과 검을 따라 달려가 있었다. 소림에서는 눈앞의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잠시 멈추는 법을 보았다. 그것을 검의 초식으로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음에 검을 뽑는다면 무엇을 위해 서 있어야 하는지 전보다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떠나는 아침, 노승은 아우에게 잘 참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보신 대로 기록해 주시오. 우리가 오늘 나눈 곡식과 아직 받지 못한 몫은 다른 일입니다.” 아우는 고개를 숙였다. 소호는 두 장부의 사본이 든 문서함을 직접 수레 안쪽에 묶었다. 강이준도 이번에는 묶인 줄을 두 번 확인했다.
남양과 양양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직 길었다. 제갈세가의 이의 문구와 소림의 청원서가 같은 문서함에 실렸다. 아우는 둘이 도성의 어느 책상에서 만나게 될지 몰랐다. 한쪽에는 큰 지급액의 내역을 밝혀 달라는 질문이, 다른 한쪽에는 두 법명을 지우지 말라는 요구가 있었다. 수레가 움직이자 그는 낙양에서 뽑았던 검을 다시 허리에 찼다. 검을 잘 쓰는 날보다 먼저 와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